서른 살, 환상과 환멸의 위험한 시간대를 유영한다!

서른 살......

청춘의 신록과 중년의 조락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선에 선 나이.

유년의 환상과 젊음의 치기를 하나씩 버리고

완전히 독립된 성인으로 주어진 삶을 수락해야 하는 나이.

성, 가족, 결혼, 우정 이 모든 것들이

새롭게 의미부여를 받고 다가오는 나이.

자신에 대한 환멸이 종양처럼 커지고

사랑마저 견뎌야 하는 타인처럼 여겨지는 나이.

["서른 살의 강"(문학동네) 중에서]

 

인생의 계획

난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청춘의 희망으로 가득한 새벽빛 속에서

난 오직 행복한 시간들만을 꿈꾸었다.

내 계획서엔

화창한 날들만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수평선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폭풍은 신께서 미리 알려 주시리라 믿었다.

슬픔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계획서에다

난 그런 것들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고통과 상실의 아픔이

길 저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난 내다볼 수 없었다.

내 계획서는 오직 성공을 위한 것이었으며

어떤 수첩에도 실패를 위한 페이지는 없었다.

손실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난 오직 얻을 것만 계획했다.

비록 예기치 않은 비가 뿌릴지라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난 믿었다.

인생이 내 계획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인생은 나를 위해 또다른 계획서를 써 놓았다.

현명하게도 그것은

나한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내가 경솔함을 깨닫고

더 많은 걸 배울 필요가 있을 때까지.

이제 인생의 저무는 황혼 속에 앉아

난 안다. 인생이 얼마나 지혜롭게

나를 위한 계획서를 만들었나를.

그리고 이제 난 안다.

그 또다른 계획서가

나에게는 최상의 것이었음을.

글래디 로울러(63세)/류시화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