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세/Das dreissigste Jahr (1)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차경아 옮김/문예출판사]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않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고함 역시 그는 빼앗긴 것이다 일체를 그는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는 바닥 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무)로 환원해버린다.

다시금 의식을 되찾아 전율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나 낮의 세계로 뛰쳐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사의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을 해내는 능력을. 지금까지 그랬듯이 예기치 않게 또는 자진해서 이런저런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끼면서,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시절을.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는 기어그이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씌워 자신을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껏 그는 이날에서 저날로 건너가며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일을 계획하며 아무런 악의 없이.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 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 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 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로.

아니면 활동적인 유능한 사나이로. 그는 자신이 작업복을 입고 교량 설치나 도로 건설 현장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야외에서 땀을 흘리며 분주히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토지를 측량하는 모습을, 양철 식기에서 걸쭉한 수프를 떠내는 모습을, 묵묵히 일꾼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응당 그는 과묵한 편이었다.

또는 사회의 썩어빠진 목재 바닥에 불을 지르는 혁명가로. 그는 불같이 뜨겁고 열변을 토하며, 어떠한 모험이든 사양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선동적이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번민하고 좌절에 빠졌다가, 마침내 최초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혹은 향락을 추구하는 예지(예지)의 방랑아로. -- 기둥에 기댄 채 음악에서, 책에서, 고사본(고사본)에서, 먼 이국에서, 오로지 향락만을 추구하는 방랑아로. 그는 다만 주어진 하나의 생을 살고, 주어진 하나의 자아를 소모시키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행복과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광휘를 갈망하는, 오직 행복을 위해 창조된 하나의 자아를 말이다!

이렇듯, 그는 몇 해 동안 가장 극단적인 사상과, 공상에 찬 계획들에 몰두했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야말로 젊음과 건강을 누리고 있던 까닭에, 아직 얼마든지 시간이 있는 것으로 여겼었고,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하였다. 김이 나는 한끼의 식사를 위해 학생들의 공부를 돌봐주었고, 신문을 팔았고, 한 시간에 5실링을 받으면서 눈을 치웠으며, 그러는 틈틈이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연구하였다. 이것저것 가릴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학생으로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어느 신문사에 입사함과 동시에 그곳을 사직했다. 신문사에서는 그에게 새로이 발명된 치아 송곳에 관해, 쌍둥이 연구에 관해, 슈테판 성당의 돔의 복구 공사에 관해 기사를 쓰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무전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자동차들을 세워 탔고, 자신도 잘 모르는 친구가 또 제삼자의 주소를 적어준 것을 써먹으며, 이곳저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가는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이렇게 그는 유럽을 누비며 방랑을 하다가는 갑자기 굳힌 결심을 좇아 다시 되돌아왔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지진 않았지만, 어떻든 쓸모 있는 듯한 직업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해서 합격을 했다. 어떠한 기회에 부딪혀도 그는 긍정을 했던 것이다. 우정에도, 사랑에도, 무리한 요구에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항상 일종의 실험으로서, 또한 몇 번이고 거듭될 수 있는 것으로서였다.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30세의 해의 막이 오르리라고는, 판에 박힌 문구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또한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무엇을 진정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순간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천한 개의 가능성 중에서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고는 -- 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껏 한번도 의혹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제껏 무엇 하나 겁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