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아침에 눈을 뜨면 바흐를 들어?" 하고 그녀는 마티니 잔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바의 로고가 새겨진 종이 받침을 들여다보다 물었다.

앞머리가 몇 올 이마에 흘러내린 채 술을 마시는 그는 뭉크의 그림 속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소리라도 질러 버리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먹어 버린 걸까.

"여전히 듣고 있어. 예전처럼 많이는 아니지만 꽤 자주 듣고 있어. 바흐는 언제나 좋아. 오히려 들을수록 좋아져. 왜일까?"

"좋은 건 그런 거잖아."

"맞아. 좋은 것은 그런 거야. 아침에 일어나서 바흐의 첼로 소리를 들으며 파자마를 벗고 세수를 하고 있으면 용기를 느끼거든.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아지지" 하고 그는 말했다.

"내가 서른이 되던 날, 알고 있지, 난 얼마 전에 서른이 되었어. 서른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그다지 대단한 인생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전까지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는 분명히 더 무거운 기분이었어. 서른 살, 미묘한 분열감이 느껴지게 하는 나이더군. 에너지 면에서도 분기점 같은 것이어서 그런 것이겠지? 자신이 어떤 인간이 되어 있는지, 그리고 나머지 인생을 어떤 인간으로 살게 될는지 예감할 수 있는 나이여서 그랬는지 우울이 깊어지는 기분이었어. 어쨌든 그 문제의 날에 밥을 먹으면서 생각한 거야. 내게 어떤 열망이 있었나? 하지만 무언가 몸 속에서 아직도 조용히 떠돌고 있는 거야."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나라는 인간은 무엇이든 간단히 단념이 되는 그런 인간은 아닌 모양이야."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존재의 이유 같은 걸 찾고 있는 거지?" 하고는 그녀는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기억을 가지고 있는 눈이었다. 어렸을 때 그녀는 눈이 쌓인 풍경을 보며, 눈에 덮여 세상이 끝나 버렸으면 하고 바랬다. 지금도 변한 건 별로 없는 것 같은 기분이다. 세계는 분명 자신의 존재양식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식탁보 위로, 부엌의 격차장을 통과한 빛의 그림자가 격자 무늬를 길고 편평하게 그리고 있었다. 빛은 응고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건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글 수는 없는 것처럼, 너무 늦었다.

현실이란 환상 같은 것이 없다면 견딜 수가 없는 것임을 인생의 어느 시기엔가 이미 알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 환상이 어떤 것이든, 그 환상이 어떠한 상처를 주고 어떠한 환멸과 공허를 가져다 주어도, 그것에 실망했다고 말해서도 그것에 화를 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것은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이 선택하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 환상이 사랑이든,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든, 고릴라를 돌보는 것이든, 사랑스런 자식이든,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든, 환상은 환상일 뿐인 것이다.

인생이란 갑자기 떨어지게 된 깊디깊은 무엇은 아닐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삶을 통해 더 깊은 곳으로 떨어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깊은 곳을 통과해 가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살펴볼 수 있을 만큼은 시간은 느리게 흐리고, 수많은 지도와 좌표들도 보게 된다. 하지만 너무 깊어서 바닥은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아, 어떤 것도 예측할 수가 없다.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많은 지도와 좌표들은, 그것을 잡으려 하면 어느 새 텅 비어 버리고 만다.

그래도 어쩐 일인지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은 끝까지 잃지 못하고 간직한 채, 어딘가로 계속해서 떨어지고 사라져 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인 것이다. 살펴보고, 생각하고, 실망하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못하고, 그리고 사라져 간다. 그리하여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면 멋진 일일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 문성혜의 장편소설 [그린란드에도 꽃이 핀다] 중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