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세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후 세시는 그녀에게 막막한 두려움과 초초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자신의 나이, 서른을......말하는 것.......같다.

새로이 뭔가를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는 시간, 나이.

그녀는 세시의 지루함을 되씹으며 마음의 안정을 잃어갔다.

뭔가 해야 할 숙제를 못한 것처럼 마음이 늘상 무겁다. 꿈에서는 언제나 시험을 치른다. 자꾸 틀린 답을 쓰다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깨어나면 뭔가 텅 빈 것 같고 이제 뭔가를 새로이 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모든 능력이 다 사라져버린 듯하다.

그녀의 시선은 무기력에 젖어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 떠 있다. 차라리 자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든다면.

눈을 감으면 모든 것들이 그녀의 신경 속에 잠입해 발기된 상태로 그녀를 위협한다. 머리는 고무풍선 마냥 부풀어오르고 무기력한 몸뚱어리는 메마른 우물 속으로 수없이 떨어졌다. 가공할만한 공허감 속으로 이성도, 분노도, 의지도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녀는 베개 속에 머리를 처박고 몇 번이나 곤두박질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건가?

원하는 게 있다면 할 수 있을까?

숨이 막힌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많은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

아무 대가도 없는 가사노동자라고 했던가.......

집에 돌아온 그녀는 아이를 눕힌다. 알콜기가 온몸을 돌며 현기증을 일으킨다. 아이는 잠이 들었다. 바로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병원에는 갔다 왔어?"

"......."

"뭐라고 해."

"......."

".......어서 자. 나도 오늘은 피곤해 일찍 자야겠어."

남편은 얼굴과 손과 그리고 발을 비누 거품을 내며 정성껏 씻는다. 그리고 잠옷으로 바꿔 입은 그는 그녀에게 오라고 한번 손짓한다. 그녀는 거실을 닦으며 걸레를 들어 보인다. 그는 한숨을 한번 쉬고 베개를 안고 잠이 든다.

그날 밤 늦게까지 그녀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멀거니 어둠 한가운데 있다. 곤고한 삶의 하루를 마감한 지친 숨소리들이 사방에 스며든다.

어둠은 먹장빛으로 그녀를 기다린 듯 엎드려 있다. 쉬 잠이 오지 않는다. 술 때문이다. 아니 혜진의 공허한 말들이 복수를 하는 것 같다. 아니다. 오랜 불면의 연속이다. 그녀는 입가를 길게 늘어뜨리며 웃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묘한 밤의 울림이 그녀의 신경에 날을 간다. 시간은 어느 한순간 멈춰버린 듯 곳곳에 숨어 있는 적요가 싸늘한 옷깃을 스치며 파리한 미소를 던진다. 그녀 주위의 시꺼먼 가구들이 저벅저벅 무거운 울림으로 그녀를 향해 조여왔다.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쓸고 닦고 비다듬었던 그녀의 손때들이 머리채를 흔들며 그녀를 덮치려 한다. 그녀는 온몸이 앙당그러지고 머리가 쭈빗쭈빗 들떴다. 갑자기 집안에 자신이 호흡한 이산화탄소가 몰려오는 듯하다. 그녀는 헉헉거렸다. 우선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를 절박하게 내몰았다. 다리가 엉켰다. 자신을 서서히 죽이고 서서히 마모시켜가는 저 시간의 괴물 앞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베란다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찬바람이 그녀의 치마를 부풀린다. 그녀는 폭발할 것 같은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리고 소리치다.

"모두들 알고 싶겠지! 내 안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하지만 알고 나면 다들 별 거 아니라고 십분도 안 돼 뒤돌아버리며 안심해할걸! 너희들에게는 유치한 감정일지는 몰라도 난 아니야!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내 능력에 의해 전혀 변해지지 않는 삶을 참을 수 없어! 참을 수 없다구! 너희는 어떤지 몰라도 난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난 너무나 초초해. 서서히 죽어가는 삶을 지탱할 수 없어! 탈출구가 없는 서른의 나이가 나를 돌게 만들어! 내가 무능해서 그렇다구! 무능해서! 깔깔깔......내가 무능하게 된 건 내 탓만은 아니야! 그렇게 만든 더 큰 괴물 같은 것들이 있다구! 깔깔깔......"

바람이 베란다 위로 올라선 그녀를 거칠게 후려갈겼다. 세상이 뱅그르르 돌았다. 한순간 자신의 삼십 년 전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차현숙의 [서른의 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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