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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생전에 친필로 남겨주신 현판>

 鶴학巢소島도  


'학소도'는 어느덧 나의 삶이 되었다.

단순히 내가 거처하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그 공간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학소도 또한 스스로 끊임 없이 변화하고 변신을 거듭하지만,

그 중심에 나는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처럼 주인공이자 전체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학소도 그리고 그 중심의 나라는 존재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호흡하고 적응하고 순응한다.

계절을 맞이하고 떠나보내고, 오르고 내리는 온도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자연과 대화한다.

학소도의 식구들 -- 구구, 서울이, 학순이 그리고 수백 종의 식물들이 나와 함께,

아니 내가 그들과 함께 비와 눈을 맞고 봄기운을 피부로 느낀다.

내가 어떻게 흘러 흘러 지금의 학소도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미스테리로 남는다.

연어도 아닌데, 어떻게 태어난 이곳 인왕산 자락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신비롭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전세계를 누볐던 내 인생의 15년이라는 긴 세월은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집과 가정, 고향, 모국의 의미를, 그 중요성을

가장 뼈속깊이 느끼게 해준 것 같다.

무의식에 잠재되었던 그런 깨닮음이 나의 발길을 고향으로 인도한 것일까.

전세계를 떠돌며 보고 또 머물던 멋지고 호화스런 어느 집보다도,

내 기억속에서는 언제나 새집이고 행복한 공간이었던 고향집을 다시 찾은 나는,

이제는 늙어 초라해진 그리고 곧 쓰러질 것 같이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집 한 채를

밝견하게 되었다.

나는 어떠한 낭만을 꿈꾸며 이곳을 찾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옛추억을 더듬어보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 유랑자가 긴 여행을 마치고 기억속에서 차츰 사라져가는 옛 고향에

한번 들리려고 찾았던 것이다.

귀향 첫날.

서울의 모습이 지난 20년간 알아보기 어렵게 변했듯이,

내 고향 인왕산 자락도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교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인왕산 정기 받아, 자라는 우리...."

어릴적 우리의 놀이터가 되어주고 태산만큼 높아보이던 인왕산.

이 바위산은 그사이 여기저기가 깍기고 상쳐나 있었다.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산의 숨통을 조이는 듯 보였다.

나의 고향집 또한 아파트 숲에 둘어싸여 처량한 모습으로,

잔뜩 움추린채 같은 자리에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옛날 정성스럽게 가꾸셨던 정원에는

반듯하게 깍긴 잔디밭과 수많은 꽃나무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집건물도 현관문을 비롯해 고물상에서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거라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하이에나가 스쳐지나간 동물시신의 잔애같이,

마치 얼마전 토네이도가 집이 있는 자리를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이.....

내 눈에 너무나 뻔뻔스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우뚝 서 있는 고층아파트들이

왠지 얄밉게 느껴졌고,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보이는 나의 고향집이 불쌍해보였다.

그나마 나에게 위안이 되어준 건 나를 동행했던 한 살배기 진돗개 인왕이었다.

이녀석은 9개월간의 아파트생활에서 해방된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앞뜰, 뒷뜰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소풍나온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12월 중순은 날이 짧아, 곧 해가지고 어두워졌다.

그나마 다행이도 집거실 천장에 대롱대롱 겨우 매달려있는 현광등에 불이들어왔다.

전등스위치에 소복히 쌓인 먼지를 보며 반신반의했는데, 다행이었다.

수도꼭지에서는 쪼로록 소리가 날정도만 물이 나왔다.

가구도 없고, 냉장고나 전자레인지도 없었지만,

전기가 들어오고 물은 있으니 며칠은 지낼 만한 산장이 되었다.

가져온 취사도구로 라면을 끓여먹고, 인왕이한테도 사료를 듬뿍 주었다.

옛날 부모님이 주무시던 안방 콘크리트 바닥에 침낭을 깔고,

20년만의 귀향 첫날밤을 보낼 준비를 했다.

설렘이나 감회, 이런 건 없었다.

오로지 새벽의 추위가 걱정됐다.

깨진 창문의 유리 사이로 겨울바람이 솔솔 넘나들었고,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실내보다 차라리 밖이 덜 추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시나이산, 히말라야, 케냐산, 안데스 등 과거 배낭여행을 하며 겪었던

추위를 떠올리자, 이런 염려도 삭으러들었다.

설마 서울 한복판에서 얼어죽기야 하겠어.

그런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칙흑같은 어둠속에서 벽을 더듬으며 겨우 전등 수위치를 찾아 전기등을 다시 켰지만,

이네 다시 불이 꺼졌다.

빛과 어둠이 몇 번 반복되었고, 결국 나는 포기했다.

불이 들어왔다 저절로 꺼지는 건 아마도 오랫동안 전기를 사용 안해

전기줄 접선에 문제가 있어서이겠지만,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속으로>나 <토요미스테리극장>에 나오는 장면도 아니고,

자정이 다되어 갑자기 전등이 나가다니.....

침낭의 지퍼를 올리고 잠을 청했다.

실제로는 광화문에서 자동차로 10분, 지하철로 3정거장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는데,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깊은 산골에 와있는 기분이들었다.

실망과 위로와 걱정이 뒤섞인 생각 속에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거실에 있던 인왕이가 미친 듯이 짖어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이 들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왕이의 짖는 소리를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9개월간 아파트에서 인왕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단 한번도 이녀석이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그래서 어머니한테서 내가 외출나간 사이에 인왕이가 짧게 짖는 소리를 들어셨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벙어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과묵한(?) 녀석이 갑자기,

그 새벽에 미친 듯이 짖어대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과연 무엇이 저녀석을 저렇게 겁주고 있는 거지?

인왕이가 저렇게 놀라 짖어댈 정도면 밖에서 어슬렁대는 도둑고양이는 분명 아닐 것이고,

그럼 사람? 이 새벽에 누가 이곳에.....설마 귀신?

인왕이는 미친 듯이 계속 짖었고, 내 온몸에 식은땀도 계속 흘러내렸다.

한편으론 거실로 나가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침낭속의 몸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어둠은 똑같았고,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게 조금더 나았다.

<이야기속으로>나 <토요미스테리극장>에 나올법한 회괴한 일이

지금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건가?

아무튼 인왕이가 짖는 중에 내가 다시 잠이들었는지(혹시 실신?),

아니면 다시 고요해지고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음날 눈을 뜨자 해가 떠있었고,

호되게 치룬 고향집 첫날밤의 신고식은 이미 과거가 되어 있었다.

거실로 나온 나를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맞았던 인왕이만이,

그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겠지.

鶴학巢소島도

이제는 돌아가야겠습니다.
날마다 그리던 내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진실의 언덕이 있고,
순수의 강물이 흐르고,
신뢰의 바다가 펼쳐져 있는
내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야겠습니다.
꺽어도 꺽어도 꺽이지 않던 교만,
버려도 버려도 버려지지 않던 욕심,
묻어도 묻어도 묻히지 않던 불만을 가슴에 안고
내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하나하나 정리해 보아야겠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야겠습니다.
맑은 웃음 소리와 밝은 이야기가 있고,
따뜻한 눈빛이 흐르는
내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어느덧 나이도 들었고, 세상을 많이 알아버려
그럴 수 없으리라 말들 하지만 귀 막고,
눈 감고 그곳으로 돌아가 새롭게 듣고 보아야겠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야겠습니다. 헝클어진 마음,
헝클어진 생각을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고생이 되고, 부끄럽고, 억울한 일 있어도
아무말 하지 않고 그곳으로 돌아가 잊을 건 잊고,
아플건 아파야겠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야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외로워도 서럽지 않으며,
넘어져도 아프지 않은 그곳
내 마음의 고향, 좋은 생각의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세상과 나에게 진 빚,
모두 갚아야겠습니다.

 - 마음이 쉬는 의자 정용철 지음

학소도의 멍멍이 식구를 소개합니다

(왼쪽에 업드려 있는 녀석이 구구,

오른쪽에 궁디 치들고 있는 녀석이 서울이,

그리고 유일한 황구 학순이)

鶴학巢소島도

고향은 세속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자연과 정서로는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곳이다. (p. 12)

고향은 나를 현실로부터 납치해간다. 아니 고향에 있으면 시간을 넘어선 영원의 세계에 온 듯하다. 이곳에는 과거가 현재이다. (p. 13)

鶴학巢소島도

인간은 '실향인Heimatlose' vs. '귀향자Heimkehrer'

*릴케Rainer Maria Rilke는 'Heimatlose'라는 말을 즐겨 썼는데,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면서, 인간의 현존(現存)과 삶에 대한 성찰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 자신 혈통은 독일계이고, 국적은 오스트리아였고, 또 출생지는 체코의 프라하였다. 그는 인간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정주(定住)할 수 없는 '뜨내기'라고 보면서 인간 존재의 근원 상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p. 17)

노발리스Novalis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Wo gehen wir denn hin?"라는 질문에 단 세 가지 낱말, 즉 "항상 집으로 Immer nach Hause"라고 답변하고 있다. (p. 18)

학소도의 항공사진(사실은 아파트 18층에서 찍은 사진)2003. 07

고향 파괴, 고향 상실, 탈(脫) 고향의 현상

이런 고향 이탈의 과정에서 인간은 공간적이고 지정학적인 고향, 즉 근원적 삶의 공간으로서의 고향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유대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자기 동질성, 존재와 삶의 근원까지도 망각 내지 상실할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그래서 오늘날 사람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뒤틀린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갖가지 사회 병리 현상은 직·간접적으로 이미 '고향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여전히 돌아갈 고향도 없는' 사람들의 고향 상실증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p. 19)

우리말에서의 '고향'은 애당초 한자어로서 원의는 '옛 향리(鄕里)'인데, 이는 곧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장'이란 뜻이다.....

1. 고풍성(古風性)

2. 회상성(回想性)

3. 은닉성(隱匿性)과 순수성(純粹性)

4. 풍경성(風景性)과 풍물성(風物性) (p. 25-6)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적어도 나에 의해서 자율적·능동적으로 선택된 곳이 아니라 신적 내지 인간적 타자에 의해 나의 운명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내 존재와 삶의 뿌리이고, 또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변경 가능한 것이 아니다. (p. 29)

탈문화적, 탈도시적, 탈근대적, 그리고 탈현세적인 것......이것은 익명화되고 비인간화되고 물화되어 소외된 현존으로부터 과거에로의 도피를 통하여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기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식 작업인 것이다. (p. 43)

고향이 자유의 공간인 것은 그곳에서는 타율보다 자율이 지배하고 개인은 이질성 가운데서 타자로 있는 게 아니라 동질성 가운데 즉자(卽自)로 있기 때문이다. (p. 44)

"자기를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는 자는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향은 행복의 샘 fons beati - 고향은 욕망에서 나온 어떤 구체적인 목적 설정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므로, 거기에서의 행복은 '자기 찾음'과 '자기 근원으로의 회기'에서 갖는 근원적 행복이다. 말하자면 '일'에서부터 오는 정신적 피곤과 육체적 피로를 씻고, '삶'을 사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은 단순히 지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제자리'이고, 따라서 고향에의 동경과 회귀는 인간의 '원초적 갈망'인 것이다. 그리고 고향에로의 이런 갈망은 그의 의식이 건강하고 정상적임을 보여준다. (p. 47)

봄의 여왕 <목련꽃>

생명의 신비로움 <호박 떡잎>

영자도 아니고 추자도 아닌 <명자나무 꽃>

고향은 '양식을 공급하는 토양'이며 '심미적 희열의 대상'이다. -페스탈로치 (p. 60)

진짜 앵두가 열리는 <앵두나무 꽃>

 

야생화 <제비꽃>

못생긴 열매와 너무 대조적인 <모과나무 꽃>

 <라일락>과 <꽃사과나무>의 조화

'소외'(근대화, 이성화, 합리화, 산업화, 비인간화) & '향수병'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합리주의, 규격주의, 획일주의에 권태를 느끼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전체주의, 구조주의, 보편주의 대신에 해체주의, 탈중심주의를, 이성 logos과 합리적 절대주의 대신에 감성 pathos과 탈합리주의를, 의미의 일의성과 절대주의 대신에 개별성, 다양성, 상대성을, 인간중심주의 대신에 탈인간중심주의를, 그리고 정치적, 역사적 관심 대신에 탈정치화와 탈역사화를 그 본질로 가지고 있다. (p. 97)

식물의 스파이더맨 <담쟁이덩굴>

매실을 선물해주는 <매화>

도시는 실향인들의 주거지다. (p. 89)

도시는 '고향의 공동묘지' (p. 90)

뿌리뽑히고, 뿌리 없는 자들이 모인 곳이 도시 (p. 106)

"고등 인간이란 도시를 세우는 동물....세계사는 도시인의 역사다. 민족들, 국가들, 정치와 종교, 모든 예술들, 모든 학문들은 인간 현존의 한 원초 현상에 관계된다. 그 현상은 도시이다." - 슈펭글러 (p. 93)

야생복숭아나무 종 <만첩홍도>

 <배나무 꽃>

고향은 거기 있는 것만 아니라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향의 '여기 있음'은 타향 속에서 그것을 찾는 이의 의식과 정신 속에만 있으므로 그의 정체적 실존에서 볼 때 그것은 너무 아쉽고, 너무 단편적이며, 또 온전치 못하다. 하지만 실향한 인간에게 향수병이라도 있음은 하나의 위안이 되는 셈이다. (p. 126)

고향은 떠나온 곳만 아니라 돌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인간도 귀향적 존재이다. (p. 127)

여름의 여왕 <능소화>

추위를 많이 타는 <석류나무 꽃>

자아는 모험을 두려워하며 모험 앞에서 경직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통해 강인한 자아, 즉 통일성을 부여하는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갖는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오디세이] (p. 153)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은 그 양친과 고향에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다." - 아퀴나스

지상의 모든 인간은 실향적 실존과 귀향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 (p. 191)

"지내기 좋은 곳이 바로 고향이다 Ubi bene, ibi patria" - 라틴어 속담

"타향도 정들면 고향" - 한국 속담

"오늘날의 인간은 전체 속에 개체성을 잃고 구조 속에서 개인을 상실하고 있다." - Peter Berger

오늘날은 쉽고 가볍고 유행적인 것을 탐닉하는 시대이다. 도시화·정보화·국제화·세계화의 물결 속에 고향 망각과 고향 상실의 시대가 되었으며, 또 뿌리뽑힌 시대가 되었다. (p. 203)

고향은 짐을 내려놓는 곳이다.....고향은 나그네 됨을 벗는 곳이다. (p. 204)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길은 고향으로 간다. (p. 205)

『고 향』 전광식 지음

2003년 11월에 촬영한 학소도 모습

특이한 맛의 <보리수 열매>

<블랙베리>

색깔도 맛도 건강한 <래디쉬>

학소도의 효자나무 <대봉감>

 

길 위에서의 생각 
                             
                                        - 이 정하 -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2004. 4. 17 촬영

우리는 삶으로부터 도피해 어딘가로 멀찌감치 달아나기를 꿈꾸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와 정반대로 삶에 더 열중할 수 있고,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의무를 피해 달아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의무를 찾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남을 돕고,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 세상을 다시 설계하는 것은 고르고 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와 맺은 약속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는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p. 17)

"사람이 집을 짓는 것은 새가 둥지를 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만일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단순하고 정직하게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하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 우리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산다."

- 소소(Henry D. Thoreau), <월든 Walden>, 1854년

"집의 생김새는 거기에 사는 사람을 표현해야 하고, 그 집으로 집 주인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성격은 그 사람이 사는 집의 모양으로 드러나며, 집을 정돈해 놓은 것으로도 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p. 68)

"나는 뒤늦게 핀 꽃들과 집 안 전체에 감도는 은은한 평화로움에 취해 조용히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무척이나 애를 써서 자기에 대해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집은 그 곳에 사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말해 준다."

- 키플링(Rudyard Kipling)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 다만 좋은 것을 먹는가, 나쁜 것을 먹는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기 밭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을 먹는 사람은 자기 밭을 갖고 있지 않는 부자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먹는다."

-루던(J. C. Loudon) <밭농사 백과 사전 An Encyclopedia of Gardening>, 1826년

"문명이란 사실 불필요한 생활 필수품을 끝없이 늘려 가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쫓기듯이 여기서 저기로 떠도는 삶이 지겨워질 때쯤이야.....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진실한 삶, 바람직한 삶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 때 모든 사람은 이토록 단순한 지혜를 무시하고 살아 왔다는 데 새삼 놀랄 것이다."

-리치(Louise Dickinson Rich), <내 고향 My Neck of the Woods>, 1950년

시끄럽고 복잡한 곳은 별로 좋지 않으므로, 꼼짝할 수 없는 일이나 어떤 의무 때문에 그 곳에 살아야 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들이 복잡한 곳을 피해야 한다는 것은 의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문제를 개선하지도 않고 그냥 사람들로 북적대는 도심에서 살아간면, 그것은 혼잡을 더해 주는 꼴만 된다......무엇을 믿고 있든 사람은 자기 믿음에 따라 행동하거나, 믿음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다. 자기 믿음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동시에 그거한 행동은 이론 따로 실천 따로인 삶을 낳고 겉과 속이 다른 성격을 만든다. 가장 조화로운 삶은 이론과 실천이,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삶이다. (p. 198-9)

<<조화로운 삶 Living the Good Life>> 헬렌/스코트 니어링Nearing 씀/류시화 옮김

자작나무

한 시인의 꿈의 덩굴도

더 곱게 가지를 치지 못하고

더 가볍게 바람에 스러지지 못하고

더 우아하게 푸른 하늘로 솟지 못하리.

부드러이, 젊고 가냘픈

너는 밝고 긴

가지를 두려움에 감추며

생기있게 미풍에 걸친다.

소리없이 흔들리면서

가늘게 전율하는 너는

내게 정겹도록 순수한

첫사랑처럼 보이려느냐.

발췌,  헤르만 헤세 <나무들> (송지연 옮김, 민음사)

鶴학巢소島도

[김서령의 家] 지구 곳곳 20년 유랑인생 늙은 집은 그를 기다렸다[중앙일보 04.02.27]

서울 홍제동 아파트 숲속의 '섬' 최범석씨 '학소도'

홍제동에 섬이 있다. 삼각형 두개를 잇댄 형태의 섬이다.

이곳의 항공사진, 실은 바로 옆 아파트 18층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나는 집주인이 당호에 재(齋) 아닌 도(島)를 쓴 이유를 유쾌하게 납득했다. 호기심 많고 장난끼 넘치는 집주인 최범석씨는 '학소도'를 빙 둘러싸고 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파랗게, 바다색으로 칠을 해서 보여줬다. 영락없는 섬이다.

문화촌 아파트 담장 아래에 숨은 120평짜리 단독주택, 얼핏 봐서 거기 집이 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아파트 단지 안의 철제 담장 한 부분을 밀면 학소도로 내려가는 작은 통로(上)가 나온다. 거기 통로가 있는 줄을 최범석씨 말고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난데없이 담장이 열리고 사람이 불쑥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면 아파트 주민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귀신이 나타났나 의심하는 일이 없도록 드나들 때 제가 조심을 좀 합니다. 하하."

비밀일 리 없지만 비밀스러운 통로로 내려서면 우선 아담한 텃밭이 나온다.거기서 좁다란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10여개 더 내려가면 한 30~4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풍경이 나타난다.

오밀조밀한 뜨락과 작고 낡고 나지막한 벽돌 건물, 학소도는 그의 부모님이 지은 집이다. 여기서 그와 그의 누나가 태어나고 자랐다. 이 집 안방에서 최범석씨는 최초의 단어를 입술에 올려 발음했고 이 집 마당에서 맨처음 걸음마를 떼어놓는 법을 배웠다. 인근의 인왕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숱한 친구들을 이 마당과 텃밭으로 데리고 왔다. 날마다 숨바꼭질. 땅따먹기.사방치기로 해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진정 기억과 시간을 풍요하게 간직한 옛 집이다. 최범석씨의 어린 날은 몽땅 이 집을 배경으로 한다. 앨범을 들추면 가족사진에 항상 이 집이 담겨 있다. 그랬던 집을 차츰 아파트들이 밀집해 포위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집은 동그랗게(삼각형으로) 고립돼 갔다. 그래도 부모님은 이 집을 팔지 않았다. 주택업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학소도를 아파트 속의 전원주택으로 고집스럽게 남겨두셨다.

그가 이 집에 돌아온 것은 4년 전인 1999년이다. 한동안 비어있던 집이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그의 주변엔 늘 친구들이 들끓는다. 솜씨 좋고 부지런한 친구 몇 명과 함께 학소도의 벽을 직접 페인트칠했다. 바닥에 평평한 돌을 깔고 창틀을 조금 손질했다. 벽체는 원래 튼튼했으니 그것만으로 집은 쓸만해졌다. 그리고 오랜 해외생활을 접으면서 짐을 학소도로 옮겨왔다. 서대문중 1학년인 79년에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독일로 떠났으니 실로 20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동안 그는 온 세상을 유랑했다. 중학교는 독일에서,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대학은 버클리.하버드와 서울대를 섭렵해 다국적 학력으로 무장했고 세계 55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거쳐온 직종도 다양하기 짝이 없다. 도서관 사서, 축구심판, 서점 직원, 영어.독일어 통역사, 학원강사, 대기업 해외 지사 사원, 국제기구 인턴사원…. 일을 해서 돈이 좀 모이면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세계지도 위에 선을 그으며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의 기록을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이란 책으로 묶어냈다.

그가 반더루스트(방랑벽)가 될 수 있었던 힘은 알고 보면 홍제동의 '학소도'라는 구심점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돌아갈 옛 집이라는 구심력이 그의 떠도는 날개에 팽팽한 힘을 실어줬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학소도란 작명은 아버지와 저의 합작이에요. 학의 둥지란 뜻의 학소(鶴巢)는 언젠가 돌아온다는 의미로 아버지가 붙이고 도는 도시 속의 섬이라는 의미로 제가 붙였습니다. 현판 글씨는 아버지가 쓰셨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의미가 새삼스러워집니다." 최범석씨는 세계인이다. 어딜가도 낯설지 않고 세계 각국에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타고난 친화력과 에너지에, 만능 스포츠맨인 그는 축구에 대한 열정이 유난하다. 덕분에 월드컵 때는 조직위원회 홍보부장을 맡아 일했다. 결국 그게 사업으로 이어져 전공도 제쳐두고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인 포르투나를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학소도는 열려 있는 집이다. 친구들이 무시 출입한다. 노총각.노처녀를 위한 파티(그는 아직 미혼이다), 애견인들의 모임(지금 진돗개 세 마리를 키우는 중이다), 축구인들의 만남, 여행 중인 서양 친구들의 숙소, 특히 인왕초등학교 동창회가 자주 여기서 열리곤 한다. "예전에 우리 집에 놀러왔던 아이들이 전의 그 마당이 이렇게 좁았던가 놀라곤 해요. 나보다 오히려 우리 집 구조를 더 잘 기억하는 친구들도 있지요.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의 추억이 축적된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이 스물두평밖에 안 되지만 30년 전에는 꽤 그럴듯한 문화주택이었거든요."

이 집에 들어오면서 최범석씨는 새 가구를 전혀 사지 않았다. 남들이 버리는 헌 집기들을 하나씩 주워와 고쳐서 사용한다. 새 것을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 집이든 물건이든 시간이 깃들지 않으면 품격이 생기지 않는다고 여긴다. "건축가 김진애씨가 말했듯 집은 시간의 갤러리입니다. 시간이 배어 있는 집, 사람들의 숨결이 축적된 집, 시간의 격과 깊이가 느껴지는 집, 시간의 층과 켜가 느껴지는 집… 그런 집이 '멋있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그는 일산에 사시는 어머니에게서 그런 의미에서 멋있는 선물 하나를 받았다. 67년생인 그가 71년에 그린 그림(下) 한점. 그림 속엔 어머니와 누나와 자신이 나란히 서있다. "아버지는 이때 캐나다에 유학 중이셔서 그림에서 빠졌네요."

삶에는 군데군데 암시가 있다. 부친은 고인이 되셨고 그는 '학소'란 말대로 여기 돌아와 이 그림을 벽에 걸었으니. 이 집은 실내에서도 신발을 벗지 않는다. 서양식 습관이 몸에 밴 때문일 텐데 방문객에게는 그게 아주 신선하다. 겨울엔 커다란 무쇠난로를 들여 거기에 장작을 잔뜩 지핀다. 열이 아니라 집안에서 불을 직접 볼 수 있는 풍요함이라니. 게다가 무쇠난로는 훌륭한 화덕이 된다. 그 위에서 빵.소시지.삼겹살.고구마가 연달아 구워져 나오는 게 가능하다. 천장엔 지난 가을 추수한 씨앗과 알곡들을 주렁주렁 걸어서 갈무리해뒀다. 해바라기.옥수수.수세미.꽃의 구근. 지난해엔 뜰에 나무를 10여그루 심었다. 농사짓는 데도 맛을 들였다. 물론 그는 다시 훌쩍 여행길에 오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돌아올 것이다. 이젠 쉽사리 팔리지도 않을, 시간의 층과 켜가 내려앉은 도심 속의 섬 학소도로.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
psyche325@hanmail.net>

사진=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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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16:00 입력 / 2004.02.26 16:03 수정

<중앙일보>에 실렸던 칼럼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학소도에 관한 이야기가 신문 그리고 책으로 소개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는데,

내가 평소 생각했던 학소도 그 이상의 의미를 풀어 미문으로

기록해준 김서령 작가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우리시대 교양인"으로 지칭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책 소개
‘집家’에 대한 해묵은 질문을 다시 하다
건축가 승효상은 자신을 일컬어 ‘집이 사람을 만든다는 걸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이 말이 듣는 이의 가슴을 치는 것은 그 사이 우리가 ‘집’의 본래 의미와 기능을 애써 외면하고 왜곡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집家은 과연 무엇인가.’
단순한 주거 공간인가, 재산 증식의 수단인가, 승효상의 말처럼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는 지혜와 안식의 터전인가.
이 책 《김서령의 가》는 이처럼 해묵은 질문,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일상의 괄호 밖으로 제쳐둔 질문을 들고 우리시대 교양인들이 사는 집 스물두 곳을 찾아가 그 안에 숨쉬고 있는 집주인의 오래된 이야기와 비밀, 켜켜이 쌓인 인생의 지혜들을 탐색해낸 책이다.
첫 대면에서 서로 반해버린 저자 김서령과 이윤기, 윤영주, 윤명로, 박태후, 최하림 등 집주인들은 이후 3년 여 동안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흉금을 터놓은 사이로 발전했다.
이 책 《김서령의 가》에 실린 글과 300여 컷의 사진들은 저자 김서령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집주인들을 찾아가 함께 밥 해먹고, 밤새워 수다 떨고, 사시사철 변하는 집 안의 풍경들을 가슴과 머리와 카메라 렌즈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천천히 그려낸 우리시대 교양인들의 일상적 풍경화이다.

우리시대 교양인의 삶을 찾아 떠난 여행
4년 전 여름, 이 책 《김서령의 가》를 기획하면서 우리는 간단하지만 명확한 몇 가지 원칙을 마련했다.
우선, 우리가 떠나는 ‘집으로의 여행’은 호화롭고 사치스런 고급주택으로 향하는 발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대지와 건축비를 합쳐 당시 서울의 30평대 아파트 가격을 넘지 않는 집들을 취재 대상으로 정했다.
두 번째, 집을 재산 가치로 여겨 사고파는 데 익숙한 이즈음 한 자리에 지긋이 붙박여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멋지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곰삭여온 사연들이 집 안 구석구석에 배여 있는 곳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세 번째, 집주인들의 삶이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시대 일반인들의 전범이 될 만한 격조와 품위를 갖고 있기를 바랐다. 사람이 제대로 산다는 게 뭔지를 말없이 실천하는 삶, 행복과 충만이란 예상외로 단순하고 명료하다는 걸 몸으로 실증하는 우리시대 교양인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인간에 대한 두터운 배려와 삶에 대한 기품 있는 이해가 돋보이는 글
신문 잡지에서 인물 인터뷰를 오래 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게 찻집에서 세 시간 이야기를 듣느니 살림집에 30분 가보는 편이 훨씬 낫더라는 점이었다. 찻집에서 들었던 얘기들은 애매하게 허공을 맴돌았으나 살림집에 같이 가보면 삶이 구체적인 몸뚱이를 드러내 글이 어렵잖게 술술 씌어졌다. -‘책머리에’ 중에서
20년 가까이 인물 인터뷰를 해온 인터뷰 전문가 김서령은 제 물 만난 물고기였다.
타고난 미감과 건축에 대한 해박한 식견, 한번 스윽 훑는 것만으로 집 전체의 구조는 물론 화장실 비누함의 모양과 층계참에 걸린 그림의 작가까지 읽어내는 놀라운 눈썰미. 거기에다 ‘진흙 속에서 찾아낸 진주’라는 칭송이 아깝지 않을 글 솜씨까지…….
《김서령의 가》가 한 신문에 연재되는 동안 그녀의 글에 반한 집주인들은 하나둘, 김서령에게 현관문을, 열린 거실을 지나 안방 문과 굳게 닫혀 있던 서랍장 문을 열어 그 속에 얌전히 누운 오래된 편지와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게다가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교유가 더해져 김서령의 글에는 집주인에 대한 한층 두터운 배려와 삶에 대한 기품 있는 이해가 얹히게 됐다.

집의 기능과 의미를 다시 찬찬히 돌아보다
《김서령의 가》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목소리는 낮고 다정하며 품위 있고, 그럼으로써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깃들이는 공간의 의미를 되묻지 못한 채 바삐 달려가는 많은 수의 이 시대 사람들에게 김서령은 ‘집家이 무엇인가?’를 소리 높여 강변하기는커녕 사려 깊은 문장으로 자신이 직접 찾아가 보고 듣고 감탄했던, 스물두 명이 사는 법을 조근조근 들려준다.
나이 스물, 또래 친구들이 한창 치기에 빠져 있을 때 홀로 집 주위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화가 박태후의 나주 죽설헌, 투자가치 높은 강남의 아파트를 마다하고 일찌감치 서울 한적한 곳에 자신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윤명로, 김영작 교수의 집에서 김서령은 왜 사람이 제 사는 거처를 한 곳에 오래 터 잡아야 하는지를 읽어낸다.
또 젊은 날의 부유와 여행을 접고 선대의 역사와 어린시절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이성원 씨의 안동 긍구당, 교육학자 김인회 교수의 관산재, 최범석 씨의 학소도, 방송작가 최환상 씨의 와선재에서는 집이 주거와 안식의 공간이라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한 가족의 영혼을 살찌우는 터전, 나아가 면면히 이어져온 선대들의 정신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 담보하는 역사의 현장임을 환키시켜준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이윤기의 관산재, 도예가 김기철의 보원요, 소설가 송혜근의 조린헌에서는 맹렬전진하는 예술가들의 진지한 열정을 돌아보고 시인 조인의 사직동 집, 데니와 젬마의 마운틴, 이상철 씨의 장흥 토담집 주인들과 밤새워 이야기하면서 무욕의 삶이 가져오는 그 충만과 행복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승효상의 말을 다시 인용하지 않더라도 집은 신산한 우리의 삶을 어루만지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워주는 공간이자 우리를 우리 자신이게 만드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 책《김서령의 가》는 바로 그 같은 집의 기능과 의미를 찬찬히 돌아보게 하는 아름답고 따스한 산문집이다. 

인터파크 제공  출처 김서령의 家 |작성자 jiydoll

 

2003년 봄부터 2004년 여름까지 「중앙일보」 주말판 '위크앤'에 '김서령의 가'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정리했다. 우리시대 교양인들이 사는 집 스물두 곳을 찾아가 그 안에 숨쉬고 있는 집주인들의 오래된 이야기와 비밀, 켜켜이 쌓인 인생의 지혜들을 300여 컷의 사진들과 함께 실었다.

책머리에

화가 박태후 씨의 나주 죽설헌
농암 이현보 종가 17대손 이성원 씨의 안동 긍구당
소설가 송혜근 씨의 혜화동 조린헌
데니와 젬마의 무욕의 집 마운틴
화가 윤명로 선생의 평창동 집
도예가 김기철 선생의 곤지암 보원요
디자이너 변상태 교수의 파주 세이재
'틈만 나면 노는 여자' 이상철 씨의 장흥 토담집
소설가 이윤기 선생의 과천 과인재
차범근, 차두리 부자의 매니저 최범석 씨의 홍제동 학소도
담양군 무월리 송일근 씨의 허허공방
50평 미만의 땅에 지은 김인회 교수의 관산재
방송작가 최환상 씨의 성남시 분당구 와선재
역사학자 하영휘 선생의 가회동 옥선관
김상신 씨의 부암동 중심서원
사진작가 유영우 교수의 남양주 어은재
김영작 교수의 구기동 한옥
'나무와 벽돌' 사장 윤영주 씨의 서오릉 집
우리 차 연구가 이연자 씨의 우이동 문수원
건축가 안명제 씨의 성북동 집 안명재
시인 조은의 장난감 같은 사직동 집
시인 최하림의 양평군 문호리 수류화개명서지실

http://blog.aladdin.co.kr/oases/1056290 씩씩하니 2007-02-07 12:02
바쁜 일상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집은 가장 편안한 곳이며 내일을 살게하는 에너지의 재충전의 장소이다. 그런 소중한 의미때문일까, 아파트 평수를 늘이고 좋은 물건들로 가득한 집을 갖기 위한 욕심이 우리 삶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집의 소유가 행복과 연결된다고 믿는 사람도 흔하게 만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무게를 더할 수록  누구나 꿈을 꾼다.  퇴직 후에는 하루종일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지내는 이런 삶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가 텃밭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자연을 느끼며 살겠다고 말이다. 힘겨운 세상살이에 지칠수록 좀 더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 본질의 문제일까.

[김서령의 家]에서 우리는 멋진 집에서 멋진 가구로 치장하고 호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작고 초라함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향기와 나름의 철학으로 채워진 진정 멋진 집들을 만난다. 야생화가 마당 가득 피고 사시사철 꽃향기가 가득한 집, 헌집에서 뜯어낸 나무로 마루를 들이고 흙으로 지은 토담집, 집을 위해 자연을 해치거나 나무를 베지않고 창으로 자연을 보는 것에 만족하고 나무 한 그루를 위해 고쳐 지은 사람의 향기가 담긴 집들이 있다. 도시 속에 있으나 도시의 매연을 느낄 수 없는 옛향기를 간직한 집, 20년을 지나 다시 태어나 자란 추억을 위해 찾아든 낡았지만 정겨운 집들이 있다. 또 설혹 새로 지어 현대적감각이 풍긴다해도 콘크리트의 차가움을 덮는 그들만의 지혜가 가득하다.

화가 박태후 등 22명의 이름세로는 유명인이 사는 집에 대한 사람들의 은근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않을까. 익숙치않은 이름으로 그들의 집을 만나고 비로서 화가로서의 박태후, 디자이너 변상태가 궁금해진다.

집은 한 10년은 살아야 주인의 숨결을 받아 마신 후에 주인과 닮은 생명체가 된다고한다.(책 중 인용) 재테크란 이름으로 점점 늘어가는 집의 규모가 아니라, 나무가 선물하는 공기를 마시고, 꽃향기를 맡으며 새소리, 물소리 들어가며 사는 김서령의 家에 살고있는 그네들이 한없이 부럽다. 새로 산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 배어있는 그들만의 물건이 가진 흉내낼 수 없는 격이 부럽고, 딱 그 집에 어울리는 근사한 이름을 지은 그들의 삶의 여유를 닮고 싶다.

참 이상한 것은 이렇게 많은 부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집을 엿보며 사실은 내가 얼마나 가진게 넘치는지돌아본다.  가진 것을 잘 지키고 다듬으며 나의 숨결을 담고 그래서 결국은 집을 보며 열심히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느낄 수 있는 집을 가지는 것, 그것이 최상의 집이고 최고의 행복은 아닐까.  

鶴학巢소島도

겨울이 되면 나무는 땔감을 주고,

땔감은 인간에게 따뜻함을 주고,

그 재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鶴학巢소島도

나무란 놈에게는 한 가지 엉뚱한 구석이 있다. 어느 해가 되면 갑자기 열매 맺기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병충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토양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꼭 삐친 사람처럼 꽃도 제대로 안 피우고 열매 맺는 것도 영 시원찮다. 실한 열매를 기대하고 가을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런 나무의 모습에 그만 맥이 빠지고 만다.

나무가 열매 맺기를 거부하는 것. 이를 가르켜 '해거리'라고 한다. 말 그래로 열매를 맺지 않고 해를 거른다는 뜻이다. 어느 해에 열매를 너무 많이 맺고 나면, 다음해 가을에는 어김없이 빈 가지만 덩그러니 달려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살아 남기 위해서다.

열매 하나를 맺는 데에는 최소한 수십 개의 잎사귀에 해당하는 영양분이 필요하다. 광합성 등 나무의 모든 생명 활동이 잎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잎을 희생한 열매의 가치는 다른 것과 비교할 게 못 된다. 나무에게 열매는 최고의 재산인 거다.

그러나 여러 해에 걸쳐 열매 맺는 데만 온 힘을 다 쏟으면 어떻게 될까. 해를 거듭할수록 나무 안의 자생력은 사라지고 점차 기력을 다하게 된다.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의 상태가 계속 나빠져 어느 순간 한계치에 달했을 때 나무가 또다시 열매를 맺으면 그 나무는 그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해거리를 통해 한 해 동안 열매 맺기를 과감히 포기한다. 그리고 해거리 동안 모든 에너지 활동의 속도를 늦추면서 오로지 재충전하는 데만 온 신경을 기울인다. 그동안 물과 영양분을 과도하게 옮기느라 망가져 버린 기관들을 추스르고, 헐거워진 뿌리를 단단히 엮으며, 말마 비틀어진 가지들을 곧추세운다.

그 어떤 생산 활동도 하지 않고 전원 스위치를 내린 나무가 해거리에 하는 게 있다면 오직 하나 '휴식'이다. 옆 나무가 열맬글 맺건 말건 개의치 않고 쉴 때는 정말 확실하게 쉬기만 한다. 그리고 일년간의 긴 휴식이 끝난 다음해에 나무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실한 열매를 맺는다.

때가 되면 모든 걸 다 접고 해거리를 통해 과감하게 '휴식'을 취할 줄 아는 나무. 일부 식물학자들이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진화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람도 하기 어려운 일을 나무들은 하나같이 당연하게 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 역시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휴식'없이 제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우리는 한 조각의 땅을 아쉬워하고 어딘지 모르게 천국과 닮은 무엇인가를 만든다. 흙 위의 정원을 말이다.

부지런하게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가래로 밭을 일구고 땅을 타고 씨를 뿌린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건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하건, 때를 가리지 않고 이 일을 한다. 이들은 땅에 동화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일은 또한 정신과 감정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자신의 동경과 내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식물 돌봄의 형태로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정원의 페르시아어 Paradies……’우리가 살아가는 있는 그대로의 기록

21세기의 정원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언할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아무리 컴퓨터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식물에 대한 우리의 갈구를 중단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젠 지음/김숙희 옮김/이은주 감수 중에서

鶴학巢소島도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하는 나에게 봄은 가장 행복한 계절이 되었다.

6년전 <학소도>로 귀향하고부터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 나에게 식물의 존재는 무의미했다.

초등학교 때까지 <학소도>에서 부모님과 살 때는 너무 어려서 식물에 관심이 없었고

(뜰 한켠에 서 있던 큰 아카시아나무를 올라타며 타잔 놀이를 했던 기억밖에는

다른 나무나 꽃에 대한 기억은 지금 없다),

그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가로수의 이름을 찾아보거나

식목일에 나무 한 그루 심어본적이 없다.

또한 계절의 변화에 그리 감성적이지도 못했다.

기온의 변화에 춥워진다, 더워진다 정도밖에 반응이 없었다.

항상 뭔가 이성적인 일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때 그때 중요한 삶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뛰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2000년 [학소도]에서 새로운 봄을 맞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묘목을 한 그루, 두 그루 집 앞뜰에 심고 집 뒤 텃밭에 채소를 가꾸면서,

식물의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내가 정성껏 심은 나무들이 계절마다 변해가고

해마다 달라지는 모습이 나에게 작지만 강한 감동을 주었다.

지난 6년간 식물에 관한 책만 30여 권 읽었고,

식물의 세계에 대해 공부하고 알 게 된만큼 더 많이 보게 되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총 6번의 봄을 보내면서,

내가 심은 각종 나무도 100 그루가 넘는다.

내가 <학소도>로 귀향한 것도 운명같이 느껴지고,

이곳에서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식물을 알 게 된 것도

운명같은 사건이다.

아, 나는 참 행운아다!

기특한 야생화 <매발톱 꽃>

꽃양귀비 <캘리포니아 포피>

모든 식물은 땅을 정화시키고 인간을 정화시킨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인간을 죽음과 화해시킨다.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으며 그 주검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대지는 풀과 나무의 씨앗과 뿌리를 품어 또다시 새로운 생명을 길러낸다. 즉 거의 모든 생명은 근원적으로 식물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전화하고 부활하며, 바로 이러한 부활의 과정을 통해 죽음과 화해한다. 

영국 글래스코우 대학의 맬컴 윌킨스 교수는 “식물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민하고 감정을 지닌 생명체”라고 말하면서 “식물 역시 잘릴 때는 동물의 피에 해당하는 투명한 액체를 흘리고 수분이 아주 모자라 ‘목마를’ 때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른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세계관의 모색......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자연에 대립하는 인간’(man against nature)에서 ‘자연 속의 인간’(man in nature)으로 바뀌고 있으며, 압도적인 물질주의에 맞서 인간의 정신적인 가치와 행복을 중시하는 ‘정신주의’가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물질주의의 반대편 저울대에 정신주의를 올려놓음으로써 최소한의 균형이나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우쳐가고 있다. 

장 지오노Jean Giono의 <나무를 심은 사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에 덧붙인 ‘편집자의 말’ 중에서 

꽃양귀비 <오리엔탈 포피>

학소도 앞뜰에서 책 읽으시는 어머니

신비스런 꽃 <다투라>

“잡초를 한자로 풀면 `잡스러운 풀'이 됩니다. 한술서적을 뒤져 보면 영어로는 정의가 수십 가지가 나와요. 가장 대표적인 정의를 한두 가지 들어보면, `원치 않는 장소에 난 모든 풀들', 또는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 대개 이렇습니다. 이것은 풀에 대한 철저히 인간 중심주의적인 정의입니다. `내가 심은 것은 작물이고, 내가 길러 먹을 것 또한 작물이다. 너는 내가 길러 먹을 작물의 영양을 빼앗아 먹고, 재배하는 데 방해만 되니 하등 쓸모가 없는 풀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이해와는 상반되는 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미안하지만 너는 모조리 죽어 주어야겠다.'”

“사실 이 땅의 주인은 식물입니다. 지구상에 이렇게 동물들이 살 만한 조건을 만들어 준 게 식물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어느날 딱 나타나서는 야채를 심어 놓고 원래 주인인 풀들을 다 쫓아냈어요. 풀만 쫓아낸 것이 아니라 그런 풀들을 먹고사는 온갖 짐승들, 생물들을 다 쫓아냈습니다. 그 결과 이 자구상에 생물종들이 현저하게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보고에 의하면 하루에도 몇백 종씩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잡초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잡초라고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일종의 모독입니다. 사람들이 이상한 작물을 심어 놓고 자신을 모조리 제거하려고 드니 잡초로서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노릇입니다......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野草)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안 만들었다는 겁니다. 야초도 마찬가지예요. 야초가 쓸데없이 그 자리에 난 건 하나도 없어요. 다 자연이, 그 땅이 필요해서 야초를 그 자리에 키우는 것이죠.”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중에서

꽃색도 푸른 <아일랜드 벨>

鶴학巢소島도

집에서 집(家)을 찾는다

(2006. 7. 10, 일요일 밤 10:55)


*기획의도


그 집만의 냄새, 감도는 기운...우리 삶의 모든 것이 살림집 안에 집약되어 있었다. 사람은 집에서 나고 집에서 살다 집에서 죽는다. 개인사란 집의 역사와 떼낼 수 없는 한 몸이었다.

-평론가 김서령

집은 삶의 흔적이다. 집의 모습은 그 사회의 정서다. 집의 문화는 그 사회의 문화다. 우리 시대가 경제적으로 풍성해지고 외면적으로 화려해졌으면서도 어딘지 각박하고 들떠서 불안스러운 것은 우리 시대에 맞는 우리 삶의 양식, 집의 양식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건축가 김진애

집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집은 삶의 보금자리이며, 사람이 살고 가족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답한다. 비교적 최근까지 집에서는 아이가 태어나거나 노인이 삶을 마감하는 많은 가족사가 이뤄졌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집을 오랫동안 살아가며 추억을 쌓아가는 곳이라기보다는 몇 평에 얼마 하는 수치로 값을 매기고 집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렇게 규격화된 집을 사는 데 거의 평생을 바친다. 소득의 상당부분을 집 사는데 쏟아 붓고, 집을 사면 다시 늘려가기 위한 노력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는 집에 대한, 지금의 집과 다른 아련한 기억들을 갖고 있다. 기억속의 집은 삶의 자취가 남은 공간이었고 기억의 저장고였다. 큰 집은 아니어도 삶이 호흡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우리는 늘 꿈꾼다.

본 프로그램은 최근 30여 년 간 급속한 사회변화와 함께 한국인의 생활을 바꾼 집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집, 집 값, 그것을 따라잡기 위한 무한 경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돌아보고, 미래에 우리의 주거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가야할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모두가 누렸던,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라진 집의 이야기들

내 아버지가 짓고 내가 태어난 집, 학소도
최범석 씨는 아버지가 지으신 서울의 단독 주택 집에 살고 있다. 그 집에서 그와 그의 누나가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집 주변은 아파트들이 하나 둘씩 들어섰고 결국 집은 빙 둘러싼 아파트 사이에 있는 섬이 되어 있다. 거실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지만 집은 1층집이다. 그의 아버지가 나중에 가족이 늘어나면 2층으로 올릴 거라며 계단만 만들어 둔 것이다. ‘학이 돌아오는 섬’이라는 집 이름을 함께 지어주신 아버지는 몇 년 전 타계하셨지만 최씨는 이 집에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 방송 후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 오른 글 일부

90년 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던 무렵 어른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은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니였다. 그 말씀을 따라 두런 두런 고개를 돌려 보면 우리 집과는 다른 아파트들이 서 있었다. 그저 시대가 바뀌고 우리 나라가 성장하면서 이제 부자 나라가 되었기에 주택이 사라지는 것이 세상이 좋아지는 것인 줄 알았다. 더구나 텔레비전에서 '자이'라는 아파트 광고 이후로 좋은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나의 삶의 쾌적함을 보증하는 것만 같았던 나에게 이 다큐는 개발 논리와 상업 논리를 보게해 주었다. 더불어 사람이 산다는 건 무엇일까 고민하게 해 준 프로그램. 넘 좋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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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보는 내내... 그리고 방송이 끝나고 난후....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방송을 보면서 내 유년시절에 내가 살던 집은 나에게 무엇이었던지 한참을 생각하게 했고 방송이 끝나고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이..내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더군요. sbs스페셜 자주 보는 프로인데 이번 방송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았구요..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하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요..한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집......그냥 집이 아니더군요...인생이라는 말....많이 와닿더라구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간만의 괜찮은 방송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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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감동스러웠읍니다..한가지 아쉬운 부분은..더 길게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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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에게 집은 고향같은 곳입니다. 학소도의 삶의 자리가 묻어있는 집, 한 그루의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들의 편안한 집을 포기한채 지어 놓은 집,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곳곳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양주택,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 이였습니다. 한양주택을 보며 고향에 다녀온 것 같은, 마음에 부자가 된것 같은 여유로움이 찾아왔습니다. 부의 척도이며 삶의 의미가 집으로 판가름된다고 생각하는 아주 이상하리만큼 잘못된 시대에 사람사는 참다운 집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편리함을 추구하자면 아파트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아파트를 닮아가는 이세대는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세대의 주역이 될 나의 자녀가 사람사는 집이 아니 개인주의를 만들어내는 공장과도 같은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집에서 출산을 하고 아이들의 추억을 위해 큰집으로 이사가는 것도 포기한채 가족을 사랑하며 집을 사랑하던 가족의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희망을 주고, 사람사는 집, 추억이 있는 고향 같은 집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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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은 오랜만에 보게 되었는데, 보고 난후 많은 여운을 남겨주네요. 저희도 새로운 집으로 이사갈 계획으로 나름대로 계획하고 있는데, 문득, 새로운 집으로 가고 싶어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남들이 더 알아줄거 같으니까, 좀더 편하게 살수 있으니까...그런 논리가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사는 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까 많은 감동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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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집이 아니겠어요? 부의 상징처럼 되어 버리고, 이미 많은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버린 집에 대해서, 진부하지 않은 이런 시각으로 접근할수 있고, 그것을 영상으로 잘 담아냈다는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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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집을 찾는다를 보고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이 크고, 높은 아파트나 빌딩에서 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집은 나와 함께 늙어 가고, 추억이 쌓여가고,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서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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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집을 찾는다..는 방송을 본후 느낀점이.. 참 많았습니다. 참고로.. 전 건축설계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항상 건축설계를 플로터 된 종이 위에 노란색 트레이싱지를 올려놓고,,사람들의 동선, 커뮤니티등등을 생각 하면서 선들을 그리곤 하져.. 그리고는 좋은 조감도를 보여주면서..사람들을 유혹하고 마치 그것이 최고인것으로.. 포장을 하고 이미지를 만들어 최고의 상품으로 자리메김 할때까지 우리는 사람들이 살아왔던..그들만의 역사나.. 흔적들은 모두 무시하면서 설계를 했던것들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러면서..우리는 최고라는 브랜드이미지에 우리를 코드화 시키고는 살기좋은 환경, 환경친화라는 그럴듯한 담론으로 우리를 바보로 만들죠...또한  우리가 야기 했던 환경친화는 sick house syndrome으로 인해 아이들은 병들어 새로운 피부염으로 병들어 가는 공간이 우리가 맨날.. 말만 하던 환경친화입니다..^^ 참 웃기져?

우리의 어린시절에는 너 어디 사니? 물어볼때.. 우리집은 등나무집에서 살아.. 아니면.. 붉은 벽돌집에서 살아라는 말을 했던 반면 지금은 어떠한지.. 우리집은 레미안..자이..등등 .. 언제부터.. 우리의 집은 기업의 브랜드가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까웠던 찰라에.. 정말이지 좋은 방송을 보내주신 sbs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 2부작을 하실의양은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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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집(家)을 찾는다는 제목이 우선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무슨 내용으로 다루어질지 궁금했구요.

집을 찾는다고 하면 일단 생각나는 것이 내집마련의 꿈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방송에서는 그 점을 소홀히 하지 않았구요.

한 아파트 광고에서 집은 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집들은 그 집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집에 대한 애착과

그 집에서 태어나고 지내오면서 혹은 떠나가면서 가졌던 수많은 기억들에 대한 내용이

제가 꿈꾸던 집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내 집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과 집이 하나의 소유임과 동시에 구속일 수도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 같아 뜻 깊었습니다.

사람들은 집을 얻고 넓혀가는 재미로 산다고들 하던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끝나지 않을 집에 대한 욕심이기도 하니까요.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곳.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

모두가 각자의 기준에 맞게 최상의 집일 것입니다.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집에 대한 생각도 알 수 있었고

왜 집들이 다세대건물들로 확산되어 가는지, 그로인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내가, 우리 부모님이 뛰어놀았던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꿈꾸는 집 또한 자연과 함께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노후에 안락한 전원생활을 꿈꾸기도 하지요.

출연자 중 한분의 말씀처럼 개발은 되어야하지만 꼭 그것이 아파트여야 하는지 의문이네요.

은평구의 집들은 정말 하나같이 탐이 나더군요. 안타깝게 개발단지 안에 들어가 있다던데..

힘내셔서 여러분들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정부가 국민의 집, 쉴 수 있는 공간 하나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하고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방송에서 많은 시청자가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학생에서부터 특히 자녀를 둔 부모님이나 부부들이 특히 공감하셨을 것 같네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삶으로 다가온 방송 정말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SBS스페셜이 많은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음합니다.

오늘 방송 정말 고맙습니다 ^^

 

** 2006년 4월말에 슬슬 시작해서  7월에 방송했던 <집에서 집을 찾는다>

   처음으로, 좀 넉넉하게, 지원받으며 해본 다큐작품인 거 같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좋은 집들도 구경해보고, 또 좋은 생각들도 만날 수 있었던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돈을 주고 사는 '물건'

   그러나 우리에게 집은 단순한 물건이 될 수 없기에... 

   진짜  돈되는 '물건'으로 집이 취급받는 이 시대가 고통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열네번의 이사를 경험한  내가,

   구성과 글을 쓰면서 가장 염두했던 것은...이미지가 아닌 경험이다.

 

   실제로 내가 이사를 하면서 겪었던 것들말이다.

   이사가는 날. 마지막에 둘러보던 텅빈 집.

   가구가 빠진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의 벽지 색의 차이는,

   내가 그집에 쌓았던 시간을 말해주는 거 같았고,

   가구가 놓여있었던 자리에 생긴 움푹한 자욱은...

   우리가족이 쌓은 이야기의 무게와 깊이같다고 느꼈던 나.

 

   내가 가장 행복하게 기억하는 집은..

   고작 2년을 살았던 강원도 화천의 군인아파트.

   겨울밤.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가족과 함께 나눠먹고,

   언니와 함께 좋아하는 남학생얘기도 주고받고,

   다섯살 아래 동생이 4년만에 겨우 젖병을 뗐던 그 집이

   나에게 가장 따뜻한 집으로 기억된다.

 

   그이후론.. 그런 집을 만난적이 없다.  

출처 [2006]SBS스페셜 - 집에서 집(家)을 찾는다|작성자 문명개화

몇 번이나 출연을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취지로 끝까지 나를 설득해 결국

학소도가 좋은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제작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게 된 점,

이 자리를 빌어 sbs 스페셜 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http://tv.sbs.co.kr/sbsspecial/index.html

SBS 스페셜방송보기는 무료입니다.
로그인 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태(모태)와 맞견주어질 공간이 있다. 이를테면 안방, 집, 고향, 품 등이 그렇다. 짐승으로 치면 보금자리나 둥지 같은 것이지만 이들을 통틀어서 ‘모태성 공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현대인이나 도시인이 된다는 것은 이 모태성 공간을 등지고 떠나는 일, 혹은 그것을 잃어가는 일이다. 모태성 공간 상실로 우리들은 20세기 후반을 아주 구겨버린 셈이다. 그리하여 모태성 없는 공간에 엉겨붙었다. 그 결과 우리들은 누구나 정신적으로 사생아가 아니면 고아가 되었다. 현대는 거대한 고아원, 그것도 사생아가 즐비한 고아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고향을 잃었다. 안방도 잃었다. 아파트 안에서 더러 안방이란 말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추억에 부친 가명(假名)일 뿐이다. 그것은 아파트가 우리집 아닌 우리집인 것과 같다. 

 

이렇듯이 우리들은 줄줄이 모태성 공간을 잃었거니와 달리 장독대 잃은 것도 함께 얘기해야 한다. 그렇다. 집안살림 규모로 우리들의 현대성을 규정짓자면 ‘장독대 없음’을 지적해야 한다. 독이며 단지며 동이, 그리고도 시루며 버지기 등 이제 이름마저 잊혀진 옹기들은 죄 부셔지고 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또 다른 우리들의 모태성 공간 그 자체가 아예 낙태수술을 받고야 말았다.  

 

김열규의 <고향 가는 길> 중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        - 파스칼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나는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그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無)라든가 영원에 가까운 허무 속으로 숨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시간에게 쫓기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나의 자유를 지키고 싶다. 하나의 틀에 나를 가둬두고 싶지 않기에, 나는 또다시 모험에 도전한다. 정말 아무것에도 제한받지 않고 자유로이 살고 싶은 까닭에, 어느 새 근본적인 권태에 빠져들어 버린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된 것이다. 권태로워하는 것, 그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별 관심이 없음을 무의식 중에 표시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내게 많은 사랑과 호의를 베풀어 준 이 세상의 삶에 대해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결과적으로 나는 사랑과 선물을 듬뿍 안겨 줬다고 어이없게도 불평을 해대는 버릇없는 아이처럼, 아주 비열한 녀석처럼 행동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미안하고 겸연쩍은 마음으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내 곁에서 위안이 되어 주었던 권태를 뒤로 한 채.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세상이 분주함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비틀거리는 순간이 찾아오리라. 그럴 때 나는 다시 권태라는 녀석에게 도움을 구하겠지. 그 녀석만이 나를 노예로 만들어 버린 힘들로부터 구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권태의 힘을 빌려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있어서 권태란 세상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 세상을 성실하게 누리고, 다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랬다가 다시 돌아가 세상의 새로운 맛을 더 잘 느끼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절제된 권태여야만 한다. 분명 나는 권태를 예찬한다. 단,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고서.

몽상.....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주의력과 무의식이라는 두 강물 사이에서 머무를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흔한 방법이 아닐까?

몽상가는 개념보다는 이미지들을 더 좋아한다.

마음의 고향이 있다......각 지방의 특색도 사라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 남아 있는 시골 고향에 대한 이미지가 더한층 마음 한구석을 흔들어 놓는다.

저 벽시계는 할머니의 것이었고, 도자기로 된 식기 세트는 결혼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 앞치마는 복권에 당첨되어서 상품으로 탔던 것이다.

익숙해 진다는 것은 미학이나 안락함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무언가를 기념하고 기리는 의미를 지닌다. 나는 파리에서 그런 미덕을 갖춘 몇몇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고향이란 것은 마음에 따르는 것이며, 반드시 지리적으로 정해진 장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다.

한 건강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시대의 흐름에서 약간 뒤로 물러나 살 수 있는 사람. 즐겨 침묵을 택할 수 있는 사람. 지식이나 경험을 쌓기 위해 애쓸 때나, 시대의 격랑 속에서 힘든 전투를 벌이고 있는 때조차도 즐겨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소유가 우리를 괴롭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궁핍을 모르게 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크게 부풀려 주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재물이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하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기술은 결코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능란한 솜씨를 필요로 한다.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은 살아가는 방법, 곧 지혜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함부로 비판하지 말 것,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 것, 상황이 제공해 준 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것, 사회 계층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을 비통한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 것, 시도해 봤다는 자긍심을 갖기 전에 자신의 취향과 운명에 따라서 착실히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것 등이 그것이다.

'지속'을 위해서 현대가 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현대에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수많은 사물과 사건들만이 있을 뿐이다.

지나치게 비만했던 지나간 시대를 후회하지 말자. 정신의 높은 봉우리를 올라가려면 날씬해질 필요가 있을 테니까.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고 하는 올림픽 경기의 슬로건은 이제 운동 경기의 범주를 넘어서고 말았다.....만일 우리가 '덜 높게' '덜 빠르게' '덜 멀게'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싶다면, 때에 따라 돌아가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는 그런 기술 그런 문화도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역(驛)은 더 이상 출발이라는 엄숙한 의식이 행해지는 신성한 사원이 아니다. 역은 우리에게 더 이상 기적 소리를 들려 주지 않는다. 부두에서 더 이상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것처럼.

과거가 지니는 매력? 우리가 더 이상 과거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이 바로 과거가 지니는 매력이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목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목표일지도 모른다.....다섯 개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세상을 감각하는 내게 만물은 끊임없는 선물을 쏟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어떤 사건들보다도 가장 나를 흥분케 하는 것은 '하루'의 탄생이다......나의 눈에는 하루의 탄생이 어린아기의 탄생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내일, 다시 한 번 나는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존재로 있을 수 있는 이 행복한 기회를 소중하게 누릴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쌍소 지음/김주경 옮김)에서 발췌

화가 친구  한 생 곤

鶴학巢소島도

마이 디지털 스토리(my digital story)가 요즘 젊은세대의 인기 화두라고 하죠?

이 홈페이지도 제가 우연한 계기로 웹디자인을 독학하여

엉성하게 시작한 게 벌써 6년째가 되네요.

좀더 기술을 익혀 더 멋진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다가도

일상에 쫓겨 몇 달씩 홈페이지에 들어와보지도 못할 때도 있었고.....

어른들 하시는 말씀이, 사람은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내 삶의 발자취가 차곡 차곡 쌓여가고 있어

나이가 들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는 또 하나의 멋진 추억거리가 생겼답니다.

<학소도>가 2004년 6월 10일 저녁 KBS-1TV에 방영됐죠.

어느날 방송국으로부터 뜻밖의 취재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이런저런 생각에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는데,

(무엇보다도 나는 이제 회사를 먼저 생각해야하는 입장이기에, 그리고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자랑할 만한 사회적 기여나 업적이 없어서)

<피플...세상속으로>라는 프로가 오늘날 주위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잔잔한 분위기의 휴맨다큐라는 설명을 듣고

방송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TV와 친하지 않아서 학소도에서는 사실 TV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 프로를 볼 기회가 없었답니다)

아무튼, 5일간 계속된 촬영은 큰 부담없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막상 최종 편집된 방송분을 보면서 그리고 그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다양한 멘트를 들으면서 즐거웠습니다.

크게 자랑할 것도, 굳이 숨길 것도 없는 삶이라서

방송이 나간 후에도 일상생활에서 변한 건 전혀 없고

KBS에서 보내준 비디오 테잎 하나가 소중한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40년간 고향집을 고집스럽게 지키셔서

세계를 떠돌며 유목민생활에 익숙해져있던 나에게

소중한 추억과 함께 정신적 뿌리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답니다.

 

KBS 담당 제작팀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2004년 6월 10일 방송

방송 다시보기 (위 이미지 클릭)

http://www.kbs.co.kr/1tv/sisa/people/vod/vod.html

鶴학巢소島도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 중에서

 나이테와 상처가 아문 자국에는 그 나무가 겪었던 온갖 투쟁, 고뇌, 아픔, 갖가지 행복과 번성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굵은 나이테가 만들어진 해는 무성하고 화려하게 피어났던 때다. 나이테가 가늘었던 해도 있었다. 그해 나무는 거센 공격을 이기고 폭풍우를 견뎌낸 것이다. 젊은 농부들은 모두 알고 있다. 가장 강인하고 가장 고귀한 나무가 어떤 것인지를. 높은 산꼭대기에서 서서 늘 계속되는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결코 파괴되지 않고 굳센 둥치로 자라는 나무가 가장 좁은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p. 52)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향이란 여기 혹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은 너의 내면에 있든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


방랑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이며, 어머니를 기억하려는 동경이다.....방랑은 고향집으로 이끌어 간다. 모든 길은 고향집으로 향해 있으며, 모든 걸음은 탄생이다. (p. 53-4)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p. 54)    1918년


내가 정원 위로 눈길을 보내면, 정원은 단지 황홀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시선을 던지는 이방인을 보듯이 그렇게 나를 대하지 않는다. 정원은 나에게 무한히 많은 것들을 준다. 지난 수년 동안 밤낮으로, 매 시간마다 모든 계절과 모든 날씨 속에서 정원과 나는 친밀해졌다.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의 잎사귀들과 그들이 꽃피고 열매 맺는 모습은 물론, 생성하고 소멸해 가는 모든 과정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친구였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나무들 가운데 한 그루라도 잃어버린다면 나한테는 친구 한 사람을 잃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다가, 깊은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발코니에 나가 나를 올려다보는 우듬지들을 바라보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 (p. 69)


어딘가에 내 집을 갖고 한 조각의 땅을 사랑하며, 그 땅을 단지 관찰하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경작하여 곡식을 재배하고 농부들이나 목장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맛보는 것, 지난 2천 년 동안 반복되어 온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의 리듬에 참여하는 것, 그것은 내게 멋지고 부러움을 살 만한 행복처럼 여겨졌다. 나로서는 다 경험해 보았던 것들이라 그런 것만으로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p. 121)

베르길리우스(B.C. 70~19): 고대 로마의 최고 시인으로 <<농경시Georgica>>에서 농사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생에는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한곳에 머물며 고향을 갖는다는 기분, 꽃들과 나무, 흙, 샘물과 친해진다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 50여 그루의 나무와 몇 포기의 화초, 무화과나무나 복숭아나무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이 그런 것이다. (p. 122)


땅과 식물을 상대로 일하는 것은 명상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쉬게 해주는 것입니다. (1955년 가을)


“식물을 가꾸고 좋은 정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단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어렵지. 불완전한 것까지도 사랑하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말지. 너야 물론 나보다 잘해 낼 거야. 너도 아니? 의지의 자유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아주 샅샅이 연구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원 일에 몰두해 봐야 한다. 대단찮아 보이는 관목도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자라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냐! 물론 아니지! 네가 어떤 관목을 골라 싶었더라도 그건 완전히 너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단다. 그 배후에는 어떤 무의식적인 바람, 추억, 필연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지.” (p. 228)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자연의 매력이 마음에 들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뻐하면서도 들판을 마구 짓밟고, 아침내는 꽃과 가지를 꺾는다. 그러고는 금세 그것들을 내던져 버리거나 집으로 가져와 시들 때까지 방치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이 되면 그런 애정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선량한 마음에 스스로 감동하는 것이다.” <<페터 카멘친트>> 중에서


정원을 꾸리면서 느끼는 창조의 기쁨과 창조자로서의 우월감이 그것이다. 사람들을 한 뙈기 땅을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바꾸어 놓는다. 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과 색과 향기를 창조해 낼 수도 있다. 작은 꽃밭, 몇 평 안 되는 헐벗은 땅을 갖가지 색채의 물결이 넘쳐 나는 천국의 작은 정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즐거운 정원>>에서


나는 이제 내 정원 안에서 자란 과일과 채소를 보며 마음의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세상에 대한 동경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 1908년 바젤로 부친 편지에서

태초에 전능한 하느님께서 정원을 만드셨다.

그리고 진실로 정원은 인간에게 가장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정원은 인간정신에 가장 큰 청량제여서,

정원이 없다면, 궁전과 건물은 조잡한 작품에 불과할 뿐.

예의바르고 우아한 시대라면

사람들은 위엄 있게 집을 짓고

섬세하게 뜰을 가꿀 것이다.

원예가 마치 최상의 예술이라도 하듯이.

......

정원을 훌륭하게 꾸미기 위해서는 1년 열두 달을 위한 정원들을 갖춰야 한다. 이 정원들에서는 계절에 맞춰 아름다운 사물들이 자라날 것이다. 12월과 1월 그리고 11월 말을 위해서는 호랑가시나무, 담쟁이덩굴, 월계수, 노간주나무, 실편백, 주목, 소나무, 전나무, 로즈메리, 라벤더, 하얀색과 자주색과 푸픈색의 협죽도, 개곽향, 오렌지 나무, 레몬 나무, 도금양, 향기나는 꽃박하 등, 겨울에도 푸르게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1월 말과 2월을 위해서는 그때에 꽃피는 메제리언 나무, 노란색과 회색의 크로커스, 앵초, 아네모네, 일찍 피는 튤립, 동양의 히아신스, 작은 붓꽃, 패모를 심는다.

3월을 위해서는 가장 빨리 피는 단순한 파란색의 제비꽃, 노란 수선화, 데미지, 아몬드 나무, 배나무, 산수유나무, 찔레꽃을 심는다.

그리고 4월을 위해서는 두 겹의 하얀 제비꽃, 쐐기풀, 비단향꽃무, 스톡, 모든 종류의 백합, 로즈메리, 튤립, 작약, 연한 수선화, 프랑스산 인동덩굴, 체리 나무와 양자두나무의 꽃, 아가위 나무, 라일락을 심는다.

5월과 6월을 위해서는 갖가지 종류의 패랭이꽃, 약간 늦는 사향장미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장미들, 인동덩굴, 딸기, 알칸나, 콜룸빈, 프랑스산과 아프리카산 금잔화, 체리 나무, 까치밥나무, 무화과나무, 산딸기, 꽃핀 포다나무, 하얀 꽃의 야생난초, 은방울꽃, 사과나무꽃을 심는다.

7월을 위해서는 다양한 비단향꽃무, 사향장미, 보리수꽃, 과일을 일찍 맺는 사과나무와 배나무 등을 심는다.

8월을 위해서는 열매를 맺는 모든 종류의 양자두나무, 배, 살구, 개암, 단 멜론, 모든 색깔의 금어초를 심는다.

9월을 위해서는 포도, 배, 모든 종류의 양귀비, 복숭아, 유도, 산수유열매, 겨울배, 마르멜트 열매를 심는다.

10월과 11월 초를 위해서는 마가목, 모과, 야생 자두, 늦은 장미, 접시꽃 등을 심는다. 이 지침은 영국의 날씨에만 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모든 곳에서 그 장소에 따라 영원한 봄을 맞는 것이다.

- <정원에 대하여>, 1625년, 프랜시스 베이컨*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영국의 재무장관 베이컨은 런던의 우중충한 날씨를 무색케 할, 항상 봄이 자리잡고 있을 이상적인 정원을 꿈꾸었다.

나의 정원은 욕망을 자극하지 않고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부주의하게 탐닉하여 갈증을 일으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치료책을 공짜로 제공하여 갈증을 해소해준다. 바로 이러한 즐거움 속에서 나는 늙어 간다.

- 에피쿠로스, B.C. 4세기

순수한 자연의 사랑스런 단순성 속에는 확실히 고결할 만큼의 정신적 평온함과 예술의 무대보다 더 높은 쾌감을 가져다주는 무엇인가가 있다......

내 생각에는 천재적 인간들, 그리고 위대한 예술적 자질을 가진 자들은 항상 자연에 대한 깊은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은 자연에 대한 연구와 모방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 <에세이>, <<더 가디언>>, 1713년, 알렉산더 포프

자아의 사랑,

자아의 사랑은 한 아름다운 정원에 갇혀 있다.

그곳에는 장미와 은방울꽃이 자라고

또한 접시꽃이 피어난다.

꽃들로 장식된 나의 정원은 지극한 즐거움을 준다.

낮이나 방이나 거기에는 한 명의 연인이 머물고 있다.

아침마다 맑게 노래하는 이 온화한 종달새보다

더 정다운 것은 없다.

피곤할 때 종달새는 휴식을 취한다.

어느 날 보았다, 종달새가 녹색 풀밭에서 제비꽃 따는 모습을.

그때 내게 종달새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내보였다.

나는 잠시 종달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새끼독수리처럼 온화하고, 장미처럼 새빨갛다.

- 16세기의 익명의 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면에서 자연의 작품과 예술의 작품을 비교할 때 후자가 더 불완전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예술작품이 가끔은 아름답고 기이하게 보일지라도 거기에는 정신을 황홀케 하는 위대함과 거대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자연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문화와 정교함을 갖출 수 있지만, 결코 디자인 면에서 자연의 작품과 같은 당당함과 화려함을 드러낼 수 없다. 예술의 아름다운 터치나 윤색보다도 자연의 거칠고 무관심한 운동들 속에는 대담하고 명인의 솜씨다운 것이 있다.

- 조지프 애디슨, 1712년 6월 25일

"저기 저 나무는 내가 어릴 때 직접 심은 거야. 아직 조그마한 나무였을 적인데 아버지가 큰 정원을 넓히는 공사를 하실 때 한여름에 뽑아 낸 것을 내가 구해준 거야. 그들은 올해에도 새 가지를 뻗어내면서 나에게 감사하겠지."

- <<친화력>> 1809년, 괴테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언제나 흙에서 평화롭고 고요한 자신만의 세계를 얻었다. 정원은 모두 다르지만....정원을 돌보는 사람의 몸짓은 그 열중하는 모습이나 느끼는 기쁨에 있어서 수세기를 통해 동일한 것이었다. 그 꿈 역시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원을 만들 때 우리는 미처 예기치 못한 풍부한 세계로 들어선다." (러셀 페이지)

작은 정원들은, 그곳이 도시이든 도시 변두리이든 시골이든 간에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그것은 공간의 크기나 매력의 정도와는 관계없이 현대 생활의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며, 지구와 우리 삶의 고동소리를 느낄 수 있는 은신처를 창조하는 일이다.

- <<세계의 정원>> p. 127

오늘날 우리들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살아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차갑고 건조하며 생명 없는 물질들하고만 관계를 맺는다. 생명체와 교감하는 법을 잊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이제 삶이 터전이 되는 자연을 파괴적인 태도로 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뭇 생명들과 잃어버린 교감을 회복하는 일이 우리에게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을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인류가 지구 위의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사느냐 죽느냐가 그 성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명체와 교감하는 감성을 회복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피로한 사람의 마음에도 쉽게 다가간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어려운 설교 없이도 자연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감각이 저절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야생 거위와 보낸 일년 Das Jahr der Graugans> (Konrad Lorenz 지음/유영미 옮김/최재천 감수) 중에서

은행잎

                           - 괴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내린,
이 나뭇잎에는
비밀스런 의미가 담겨 있어
그 뜻을 아는 이들을 기쁘게 한다오.

둘로 나뉘어진
한 생명체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답을 찾다가
마침내 참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는 내 노래에서 느끼지 못하는가
내가 하나이며 둘임을.

꽃은 열매와 씨앗을 맺었고, 열매와 씨앗은 다시 지구상에서 생명을 탄생시켰다. 동물을 유혹해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속씨식물이 당분과 단백질을 생산한 덕에 세계적으로 식량 에너지 공급이 증대되었고, 이로 인해 온혈동물인 포유류가 대거 등장할 수 있었다. 꽃이 없었다면,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세상에서도 건재했던 파충류가 지금까지도 분명 수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으리라. 꽃이 없었다면, 우리 인간도 없었으리라.

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자연의 이중적 특성, 다시 말해 창조와 소멸의 힘이 경쟁을 벌이고, 복잡한 형태를 지향하며 솟구쳤다가 이내 사그라지고 마는 특성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원은 여러 가지 성스런 예식이 가득 찬 곳으로, 때로는 일상의 흔한 공간이기도, 때로는 교회처럼 특별한 공간이기도 해서, 우리 인간과 자연세계가 영속적 유대를 맺는 의례를 우리들이 단지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 곳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유대의 영속성도 오늘날에는 상당히 시들고 말았는데, 문명이 인간과 대지와의 관계를 끊어놓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관계를 망각하도록 갖은 애를 쓴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정원으로 오면 과거의 유대관계가 되살아나고 이는 단지 상징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정원 한구석에 채소를 심고 이를 먹을 뿐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태양이며, 빗물이며, 흔히 광합성이라 부르는, 이파리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는 연금술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의존하며 사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저 위를 향한 우리의 막연한 시선을 잠시나마 대지로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오늘날 또 다시 자연이 우리를 마음대로 부리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유용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정원에서 조용히 자라는 전지전능한 식물과 나무를 바라보는 일처럼 황홀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가 보기에 봄 녘 대지 위에 초록도시처럼 솟아난 밭두둑의 파릇파릇한 어린 채소만틈 감동적인 광경도 흔치 않다. 나는 새로 심은 푸른 채소와 검게 변한 토양이 만드는 디지털 리듬과 여름의 위압적인 복잡함이며 온갖 전염병과 식물의 녹음이 찾아들기 전, 울타리를 두른 텃밭의 기하학적인 질서를 사랑한다.

농부나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라면 대개 자신의 지배가 기껏해야 운이나 날씨, 그리고 불가항력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좌우되는 허구임을 알고 있으리라.

1532년 안데스산맥......약 8천년 전 잉카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얼추 3천 종에 달하는 감자가 있었다.

'이상적 감자' 즉 맥도널드가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의 머릿속에 성공적으로 심어 놓은 감자의 이미지였다. 농업에서의 모노컬처(monoculture)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적 입맛의 모노컬처 역시 획일성과 지배와 관련된다.

특정성이나 지역성보다는 보편성을, 구체성보다는 추상성을, 현실보다는 이상을 자연보다는 인위를 미화하려는 우리의 욕구가 표출된 것이다.

'변화무쌍함'과 '자유분방함'에 반대하여 '획일성'과 '질서정연함' -- 모노컬처

'십 년 사이에 아이랜드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고'.....아일랜드의 재난의 씨앗을 뿌린 것은 감자 그 자체라기보다는 감자의 단일재배였다.

자연의 복잡성과 다양성, 그리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우리 인간의 영웅적 노력에 맞선 자연의 완강함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자연이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한다면 농업에서 재생산 수단으로 이용해 온 자연의 소유물, 즉 씨앗이다.

결국 튤립이 최후의 승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네덜란드 중산계급의 은행잔고가 바닥을 드러낸 뒤에도 전세계 튤립은 승승장구를 거듭했으니까 말이다.

공진화(共進化) -- 인간과 식물의 욕망이 어우러진 춤판으로, 이 춤판의 욕망은 참여한 식물과 사람을 기어이 변화시키고야 말았다.

접붙이기를 하는 사람들이나 단일재배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유전공학자들처럼 생명의 다양성을 축소하는 일은 진화의 가능성, 다시 말해 우리에게 열린 미래를 축소하는 일이다. 동물학자 E. O. 윌슨은 생물다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는 십억 년에 걸쳐 진화한 생명체의 집합이다. 그동안 온갖 부침(浮沈)을 다 삼킨 뒤 그것들을 유전자에 담아 세상을 창조했고 그 안에서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 안에는 세계가 안정되게 존재한다." 다양성을 위협하는 일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다.

<<욕망의 식물학: 식물이 세상을 보는 관점>> 마이클 폴란 지음/이창신 옮김, 최재천 감수에서 발췌

“비록 내일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련다.”

-마틴 루터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2004. 7. 31

일년 중 <학소도>가 가장 푸른 때이다.

지난 4년간 봄이 오면 정성스럽게 심은 어린 묘목들이 어느덧 내 키를 훌쩍 넘어

어른 나무다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학소도>의 변해가는 모습은 곧 나의 삶이고

나의 미래이고 나의 꿈이다.

지구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는 거꾸로 이 지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제대로 사는 게 중요해진다.

[......]

지구를 제집처럼 돌아다니며 목숨을 걸고 배우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삶의 방식의 하나다.

하지만 그런 삶을 대다수인 우리가, 더욱이 일생 계속할 수는 없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배움과 동경의 여행은 끝나고, 여기에 사는 게 시작된다.

때때로 떠나는 여행도 포함하여,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대다수인 우리에게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인생 여행의 참다운 시작이다. 

[......]

지구 위의 어느 장소이든, 사람이 한 장소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거기서 나고 죽을 각오를 하면 그 장소에서 끝없는 여행이 시작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물론 이런저런 실제의 여행이나 모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일생을 방랑자나 모험가로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나의 여행은 ‘여기에 산다는 것’ 속에 있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삼라만상 속에서 삼라만상의 지원을 받아 가며 거기에 융화돼서 사는 것이다. 

숲, 강, 바다, 풀, 벌레, 꽃, 도시, 그리고 인간은

지금 그 존망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삼라만상의 일원으로서 여기 살 수 있으면 작은 혹성이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적어도 앞으로 천 년이나 2천 년의 문명을 이 지구는 우리에게 허락해 줄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다. 

[......]

인간은 본래 물과 빛, 흙과 공기에 속해 있는 생물이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1그램의 흙 속에 수억 마리 이상 북적거리고 있는 대지의 박테리아들의 생명에도 속해 있는 것이고, 그 위에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풀들에게도 속해 있는 것이다. 

푸른 풀들은 우리의 생명의 조상이자 고향이고,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살며 기쁨을 맛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형제자매이기도 하다. 

담배 한 대를 천천히 태우며 나는 그런 것을 느끼고 새삼 나의 형제이자 자매인 푸른 풀의 말 없는 환성을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푸른 풀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  (세계적 사고, 지역적 실천)

 

'생명지역주의 Bio-regionalism' - Gary Snider 

 

게리 스나이더에 따르면 생명지역주의란 우리들이 이제까지처럼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삶의 방식을 바꿔 사는 데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해 나가고 있었다. 

 

각 지역의 전통 문화를 계속 존중하며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하는 게 주된 뜻이었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야마오 산세이 지음/이반 옮김   

 

정선의 〈인왕제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