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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TM

2002. 5.31-6.30

 <2002년 2월 20일자 조선일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0~40대 초반 축구 칼럼니스트들 구성


◇사진설명:라이너 홀츠슈-강석진-강헌-김종환-장원재-최범석(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일보는 2002 월드컵을 앞두고 강석진 강헌 김종환 김주용 장원재 최범석씨 등 30~40대 초반의 젊은 전문가 그룹으로 축구 칼럼니스트진을 구성해 상시 가동합니다. 칼럼니스트들은 수학·컴퓨터공학·국문학·경제학 등 학문적 배경이 서로 다르고 대학, 해외연구소, 대중문화 등 활동분야도 다르지만 축구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지식은 국내 최고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세계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독일의 축구전문지 ‘키커(Kicker)’의 편집장 라이너 홀츠슈씨도 이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본지에 기고를 합니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정보로 무장한 칼럼니스트들은 꼭 100일을 앞둔 대회까지, 또 월드컵 기간에도 독자들에게 축구를 보는 다양한 시각과 흥미있는 화젯거리들을 선사할 것입니다. 이들은 조선일보 월드컵 관련기사의 기획과 심층 분석에도 참여, 생동감있는 지면 구성을 위해 기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것입니다. 오늘은 홀츠슈, 강석진씨의 칼럼이 선보입니다. 본지 축구 칼럼니스트들의 활약을 기대해 주십시오.

▲강석진(41·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축구공 위의 수학자’ 저자)

▲강헌(40·대중문화평론가)

▲김종환(40·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전 축구 국가대표)

▲김주용(34·영국 런던 임페리얼공대 컴퓨터사이언스 박사과정·98 프랑스 월드컵 미디어 코디네이터)

▲장원재(35·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최범석(35·월드컵 조직위 사업국 마케팅전문위원·미국 하버드대 정책학석사)

▲라이너 홀츠슈(독일 축구전문지 키커 편집장)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월드컵 릴레이 칼럼] 희망이 담긴 축제 됐으면


“제 이름은 앨랜 홀이고 나이는 열두 살입니다. 무척 바쁘실텐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이렇게 글을 보냅니다.”

작년 가을, 영국으로부터 한국 월드컵 조직위로 배달된 한 소년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월드컵 기념품을 보내달라고 세계 곳곳에서 편지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그런 편지 중의 하나려니 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저는 지금 위암으로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제가 죽은 후 친구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가장 좋아하는 주제로 글을 한 번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월드컵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2002년 한국에서 열릴 월드컵이 가장 기다려지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아마도 제 생의 마지막 글이 되겠지요.”

나는 이 소년이 받아보고 싶다는 2002년 월드컵 안내책자를 기념품과 함께 큼지막한 항공봉투에 담으면서 깊은 상념에 빠졌다. 문득 이 행사가 지니는 의미가 새롭게 가슴에 다가왔다. 새 천년 첫 월드컵, 두 나라가 공동개최하는 첫 월드컵, 11조원의 국내경제 생산 유발 효과와 국가 위상 제고를 가져다 주는 월드컵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 뒤에 숨은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희망이 아닐까. 특히 지구촌 어디에서나 천진한 꿈을 간직하고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단군 이래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국제행사인 2002년 월드컵은 정치, 경제, 외교, 상업적 목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라는 더욱 소중한 선물이 담겨 있다고 나는 믿는다. 최근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판정 시비와 그로 인한 젊은 네티즌들의 분노는 세계적 축제에 대한 이들의 관심과 기대가 얼마나 큰가를 역설적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소년은 “죽기 전에 TV를 통해 2002년 월드컵을 꼭 보고 싶다”는 말로 편지를 끝맺었다. 소년에게 보내는 소포를 봉하면서 나는 소망했다. 2002년 월드컵이 소년에게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마지막 담쟁이 덩굴 잎이 되기를. 그리고 앞으로 50년 후, 소년이 2002 월드컵을 멋진 문화·스포츠 행사로 기억하고 자신이 이 지구촌축제에 대해 쓴 글을 다시 한번 읽을 수 있게 되기를.

( 최범석·2002 월드컵조직위 사업국 전문위원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조선일보> [릴레이 칼럼] FIFA와 한·일이 맞든 ‘백지장’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우리 속담은 혼자보다 남과 같이 협력해 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좋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96년 5월 31일 2002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됐을 때, 양국은 물론 스위스 취리히 FIFA 사무국에서도 ‘맞들면 낫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 후 한국과 일본에는 각각 월드컵조직위가 출범했고, 곧 2002년을 향한 180여개의 준비사업에 착수했다. 양국과 FIFA 실무자들은 입장권 판매에서부터 미디어·수송·숙박·안전·해외홍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공동개최 정신을 살려가야 하는 숙제를 떠맡게 됐다. ‘한·일 공동개최는 마치 두 차례의 월드컵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 같다’는 한 FIFA 실무자의 푸념은 3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공식포스터 제작은 하나의 좋은 예. 개막 300일 전에 발표된 공식포스터는 FIFA가 표현하고자 하는 축구의 열정과 양국의 문화를 균등하게 담아 하나의 작품에 반영시키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각 조직의 전문가들과 세계적인 디자인회사 인터브랜드(Interbrand)사가 수십 차례의 회의와 토론, 협상 끝에 드디어 공식포스터를 발표했다. 하지만 축구장 형상 안의 둥근 공식 엠블럼이 붉은 색이어서 일본 국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한국측의 항의를 받고 수정된 사례가 이러한 공동작업이 얼마나 힘든가를 잘 나타내준다.

때로는 한·일이 하나가 되어 FIFA에 강하게 항의도 하고, 때로는 FIFA가 나서 두 나라간의 이견을 중재하기도 한다. FIFA가 한국 실무자에게 ‘한국이 일본보다 준비작업이 앞서 있다’고 격려해 주는 일도 있고, 일본 실무자에게 한국 상황을 귀띔해주는 일도 있다.

세 명이 종잇장을 맞드는 건 두 명이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서로 키가 다를 수도 있고, 평소 걷는 속도나 습관도 다를 수 있고, 심지어 손가락의 힘도 각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2002 월드컵 준비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자부한다.

( 최범석 /월드컵조직위 사업국 전문위원 )

 

2002년 4월 23일

 [월드컵조직위사람들] 최범석 전문위원

최범석 전문위원

 

"저는 조직위 리베로입니다."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 해외마케팅 전문위원 최범석씨(35)는 조직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리베로에 비유했다.

고유 보직이 있지만 각종 부서에서 필요한 일이 생길 경우 지체없이 지원하는 그의 업무특징을 잘 나타낸 말.
 
최씨는 사업국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각종 공식협력업체 등과 업무를 조율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FIFA와 조직위 간 현안이 생길 경우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최씨가 조직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6월부터. 당시 최씨는 오랜 유학생활을 마친 상태였다. 수많은 대기업들의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그는 주저없이 조직위를 선택했다.
 
14년간 유학을 하면서 조국에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축구를 좋아한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최씨는 '조직위의 보배'로 불린다. 문화행사추진본부 김일재 기획부장은 "최위원은 조직위에 없어서는 안될 비범한 인재"라고 평가한다.
 
현재 최씨는 해외입장권 판매문제와 문화행사 관련 일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더구나 5월 중순부터는 FIFA본부 호텔로 파견돼 월드컵 진행의 일선현장에서 근무하게 된다.
 
"월드컵은 단군 이래 최대의 국가행사입니다. 성공적인 월드컵 행사를 치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최씨의 각오가 사뭇 비장하다. 


전광열 기자 gidday@hot.co.kr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조선일보 [월드컵 릴레이 칼럼] 맨체스터發 월드컵 티켓


특수 운송차량이 건물 앞에 멈춰서자 건장한 영국인 보안요원 두 명이 라면상자 크기의 종이박스들을 건물 안으로 운반하기 시작한다. 보안장치가 된 작은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국인 젠 존즈씨는 곧 박스를 개방하고 내용물을 꺼내 숫자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곳은 영국 맨체스터시 근교. 박스의 내용물은 다름아닌 2002 월드컵 입장권이다. 존즈씨는 맥도날드사가 주문한 입장권을 직접 가지러 미국 애틀랜타에서 날아왔다. “오늘밤에는 이 입장권들을 호텔 금고에 맡겨놓았다가 내일 비행기로 런던에서 도쿄를 거쳐 서울로 가지고 가요. 호텔에서 공항까지, 그리고 도착한 후에는 공항에서 현지 목적지까지 보안요원들이 저를 에스코트해줄 거니까 도난사고에 대해 불안하진 않아요.”

영국 바이롬사가 제작한 2002 월드컵 입장권이 드디어 인쇄에 들어갔다. 인쇄된 ‘따끈따끈’한 입장권은 곧바로 전 세계로 배송된다. 공식 스폰서 업체들은 물론이고 FIFA 및 각국 축구협회, 방송관계자와 언론, 외국 일반구매자들 그리고 한·일 조직위원회는 예약한 대부분의 입장권을 1~2주 안에 받게 된다.

“인쇄기는 24시간 가동 중입니다. 단체나 구매자 정보가 최첨단 기술로 인쇄돼 2002 월드컵을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하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될 겁니다.” 바이롬사의 입장권인쇄 책임자 아담 브라운씨는 피로가 쌓여 충혈된 눈을 손등으로 비비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조직위원회와 축구협회, 각 개최도시 및 모든 월드컵 관계자들은 지금 생애 가장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으로 마무리 준비작업에 헌신을 다하고 있다. 국내에서 교부될 입장권의 인쇄현황을 최종 점검하러 영국으로 날아온 나는 브라운씨의 충혈된 눈을 보며 쌓인 피로를 씻는다. 한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그리고 아마도 내생애 마지막이 될 2002 월드컵의 입장권. 이제 얼마 후 이 최고의 월드컵 기념품을 손에 쥐고 기뻐할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덩달아 마음이 들떠온다.

[최범석·월드컵조직위 사업국 전문위원]

'미니예술품' 월드컵 입장권의 모든 것

<굿데이Good Day> 2002. 5. 18 토요일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벰로즈사 인쇄기가 월드컵
입장권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다.

 


[관련기사]
[입장권 제작 과정]
월드컵 입장권 5가지 보안장치 '위조는 없다'

월드컵 입장권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어느 경로를 통해 구입자의 손에 쥐어질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최범석 한국월드컵조직위(KOWOC) 마케팅 전문위원이 지난 4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영국 맨체스터 벰로즈사와 바이롬사를 방문했다.

또한 입장권은 위조의 위험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월드컵의 진한 감동의 현장을 감상할 티켓인 입장권의 모든 것을 철저히 해부했다.

<최범석 사업국 전문위원>


필자가 90년대 중반 세계무역기구(WTO)에 근무할 당시 뤼드빅이라는 프랑스 외교관 친구와 가깝게 지냈다. 그는 거실 벽면에 와인 라벨들을 작은 나무액자에 담아 걸어놓은 독특한 취미를 가졌다. 자신이 아끼는 최고급 보르도산 와인은 언제 누구와 마셨는지 등의 추억을 영구히 보관하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소품들을 수집한다. 그 중에는 94년 미국월드컵 한국 경기와 유로2000 결승전 입장권이 있다.
 
뤼드빅이 와인 라벨을 바라보며 옛 추억을 되새기 듯 가끔 지난 입장권을 보며 90분 동안 경기장을 메우던 함성을 기억 속에서 재생한다. 또 하나의 소중한 기념품으로 남을 2002년 한·일월드컵 입장권 인쇄 과정을 최종 점검하기 위해 영국 맨체스터로 출장을 떠났다.


 
이번 월드컵의 입장권 제작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해외 판매대행사인 영국의 바이롬(Byrom)사가 맡았는데, 계획보다 인쇄 일정이 많이 지연됐다.

1년전에 입장권을 구매한 한국 축구팬들의 아우성을 등에 업고 40여명이 근무하는 바이롬사의 사무실에서 담당자들과 회의를 시작했다.

인쇄가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국내 판매분을 비롯해 공식스폰서, 일본, 기타 해외 판매분 등 많은 데이터가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프로세싱 자체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이롬사의 담당 직원들은 밤샘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그 많은 데이터를 단시일 내에 효율적으로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음은 더없이 초조했지만 담당 직원들에게 더 빠른 처리를 촉구하고 작업 과정을 수시로 체크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인쇄과정 자체에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바이롬 본사에서 차로 약 2시간 떨어진 인쇄사 벰로즈(Bemrose)로 향했다. 벰로즈사의 월드컵 입장권 프로젝트 매니저 올리버와 퍼거슨 이사가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우리의 다급한 상황을 이해하고 한국 입장권의 인쇄 데이터가 바이롬사로부터 넘어오는 즉시 24시간 공장을 가동하여 인쇄를 최대한 빨리 끝마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국내에서의 효율적인 배송을 돕기 위해 우리 측이 제안한 대로 교부처별로 포장해주겠다고 했다.
 
공장은 철저한 보안 속에 가동되고 있었다. 바탕 디자인만 찍혀 있는 거대한 입장권 두루마리가 쌓여 있었고, 이후 홀로그램 부착과 개인정보 입력, 포장 작업까지 일사불란하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러시아 국내용 복권이 인쇄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방금 인쇄된 한 대형 은행의 자기앞수표가 포장되고 있었다.
 
퍼거슨 이사는 "위조를 방지하는 특수 인쇄물을 제작하는 게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죠"라고 설명했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인쇄 지연으로 인해 월드컵의 최대 고객인 축구팬들이 감수해야하는 피해를 어떤 식으로 보상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그나마 한국대표팀을 비롯한 모든 팀의 멋진 플레이로 어렵게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월드컵이 끝나고 한국의 10개 경기장이 텅 비어도 한달 동안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감동은 입장권과 함께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최 범 석

 

본지 칼럼니스트들의 '월드컵 즐기기' <조선일보> 2002. 3. 5


 
  ▲사진설명 : 본지 축구 칼럼니스트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 월드컵 기념 조형물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왼쪽부터 강헌 김종환 최범석 강석진씨./김진평기자
   
“그냥 좋은 거 있잖아요. 축구를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말은 그렇게 시작했지만 누가 말리지 않으면 밤이라도 새워야 할 것 같았다. 수학자, 대중 음악 평론가, 축구 국가대표를 지낸 교수, 조직위원회 마케팅 전문위원…. 직업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축구광인 본지 축구 칼럼니스트 4명이 만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들은 도대체 ‘축구가 뭐길래’, ‘월드컵이 뭐길래’ 지구촌이 이렇게 열병을 앓는지 신바람을 냈다. 막힘없이 이어지던 이야기는 ‘한국은 월드컵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란 대목에서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축구와의 만남

▲김종환=펠레와 에우제비오의 경기장면을 TV에서 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활동적인 축구를 통해 내성적인 성격도 바뀌었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운동하는 걸 반대하셨다. 지금이야 프로축구도 있지만 옛날에야 어디 그랬나. 수송초등학교 4학년 때 딱 한 달만 하겠다 도장찍고 시작했다.

▲ 강헌=초등학교 5학년까지 배드민턴 선수였다. 배드민턴은 실내경기이고 여학생들과 같이 훈련을 받아 좋았다(웃음). 축구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유니폼 때문이었다. 강당의 창문 사이로 보이던 축구팀 선수들이 똑같이 입고 뛰던 빨간색 유니폼의 유혹. 난 그 때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강석진=어릴 적엔 밤 10시반에 시작하는 축구중계를 부모님 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슛을 날리면 “슈웃~, 아! 살짝 빗나갔습니다”, 상대편이 슛을 날리면 “어림없는 볼”이라고 외치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소풍 때 이런 아나운서 흉내가 단골메뉴였다.

▲최범석=중·고등학교를 독일에서 다녔는데, 차범근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차붐”으로 맹활약할 때였다. 난 클럽에서 ‘최붐’으로 불리며 자연스럽게 축구를 시작했다. 얼마전 조직위에서 일한다고 아버님께 말씀드리자 “어릴 때부터 좋아하더니 결국 축구일을 하는구나” 하시더라.

 

◆가장 본능적인 스포츠

▲김종환=축구는 장비가 필요없다. 그저 공 하나만 있으면 된다. 예전에는 돼지 오줌보를 찼다고 하지 않나. 기어다니다 걷고, 뛰다보면 자연적으로 차게 된다. 축구는 가장 본능적인 스포츠다.

▲강헌=축구는 지역·국가·민족·대륙의 공동체적 연대감을 확인하는, 정치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스포츠다. 국가대표라는 상징을 통한 민족통합성이 그것이다. ‘한솥 밥을 먹는다’는 말이 딱 맞는다.

▲김종환=축구는 단체경기라 해도 선수 개개인의 창의력이 중요한 경기다. 감독이 지시를 해도, 결국 그라운드를 뛰는 것은 선수다. 스스로 준비하지 않고 생각이 없으면 안된다.

▲최범석=유럽의 축구발전은 산업화 과정과 관계가 깊다. TV가 없던 노동자 계급에겐 주말에 찾는 축구경기장이 유일한 낙이었다. 요즘은 다른 여가 수단이 많아져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박진감 넘치는 TV중계로 급부상하는 농구나 야구처럼 미디어의 영향도 큰 것 같다.

▲강헌=거기엔 광고문제가 한몫한다. 전·후반 45분씩 계속되는 축구는 농구나 야구처럼 광고를 붙일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과거 미국에서는 축구도 ‘쿼터제’로 바꾸자고 했다지만 거부당했다고 한다.

▲김종환=3점슛에서 보듯 농구는 팬 확보 차원에서 경기규칙을 바꾼다. 축구는 전통을 지키는 경기다.

▲강헌=누구나 할 수 있는 축구는 농구보다 민주적인 경기다. 장신 선수가 필요한 농구는 키작은 사람이 선수가 될 수 있는 통로가 좁다.

 

◆절제된 규칙속에 폭발하는 야성

▲강석진=축구는 짜임새 있는 패스와 부분전술의 세밀함, 기습적으로 날리는 장쾌한 슛이 어우러져 짜릿한 감동을 준다. 절제된 규칙 속에서 폭발시키는 야성이 매력적이다. 싸움과 권투의 차이처럼 말이다.

▲김종환=축구의 묘미는 90분 내내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는 데 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언제 골이 터질지 몰라 뒤돌아보게 만드는 긴장감이 그것이다. 어제의 패자가 언제든 오늘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예측불가능성도 한몫한다.

▲강헌=연애할 때 애인과 야구장에 가면 경기규칙을 설명하다 끝난다고 한다. 축구는 그냥 보면 된다. 반칙에 대해 물어보면 “비신사적 행위야” 한 마디면 끝난다. 접근성이 매우 높은 스포츠다.

▲강석진=다른 경기는 쉬는 시간도 많고 설명할 것도 많아 애인 앞에서 잘난 척할 수 있지만 축구는 그게 안된다(웃음). 대학 때 본 경기에서 대우의 정해원이 혼자 4명을 제치고 슛을 날렸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은 “봤냐?” 그것 뿐이었다.

▲강헌=대표팀 경기의 생중계가 있던 날, 새벽까지 훤하게 불 켜있던 아파트의 그 많은 창문들은 뭘 의미할까? 선거 투표율이 50%도 안되는 나라에서 말이다.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과 중계를 보는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은 아닐까?

▲강석진=골을 넣고 환호하는 선수를 보며 ‘아, 저 선수는 지금 삶의 최고순간을 맛보고 있구나’ 생각했다. 내 인생의 어느 한 순간 저런 때가 찾아올까 생각하면 부럽기만 하다.

 

◆축구는 끊을 수 없는 마약

▲강석진=축구는 내게 휴식이다. 난 경기를 보고 공을 차며 재충전한다. 지난달 14일에는 A매치 6경기를 전부 녹화해서 보았다. 축구를 보다 잠든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축구를 통해 인생의 철학을 배웠다. ‘승리는 소중하고 신성하다’ ‘반칙을 해서는 안된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정정당당히 겨루면 이길 수도 있다. 그런 승리만이 진정한 만족감을 준다’ 등이다. 또 축구는 또 ‘슛해야 할 때 하지 않는 사람은 책임감 없는 사람…’ ‘왼발 슛 하나는 기막힌 마라도나처럼 뭘 하든지 제대로 해라’ ‘쉬운 발동작 하나라도 시합에 써먹으려면 완전히 내것을 만들어야 한다’ 등 학생들에게 전하는 내 ‘비유의 원천’이다.

▲김종환=선수생활 동안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잘할 때도 부진할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냥 좋았다. 선수 때는 기량향상에만 몰두했었는데, 이젠 팀을 지휘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축구는 한 번 빠지면 끊지 못하는 먀약같은 것이다.

▲강헌=월드컵은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는 기회다. 새벽에 열릴 중계를 앞두고 저녁부터 집에 모여 술 한잔 하고 얘기하고 내기도 하고…. 축구가 뭐길래 다 큰 어른들이 꾸역꾸역 집에 모일까 생각하면 우습지만, 역시 축구는 여럿이 같이 봐야 재미있다. 십수 년간 다음 월드컵 땐 꼭 경기장을 찾겠다고 다짐했었다. 이번엔 우리나라에서 열리니 약속을 지킬 수 있겠다.

▲최범석=축구 경기를 보며 나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내가 할 수 없는 화려한 기술로 골을 넣을 때 느끼는 그 짜릿함, 다른 말이 또 필요할까?

 

◆내 추억속의 월드컵

▲강석진=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74년 월드컵을 잊지 못한다. 개인기와 창의력이 어울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네덜란드의 ‘토털사커’에서 민주주의가 이런 게 아닐까 어렴풋이나마 느꼈다면 과장일까? 가장 멋진 장면은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가 브라질을 상대로 몸을 날리며 그려낸 인사이드 발리슛이다.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은 내게 ‘오렌지 군단’이 아니라 꿈에 그리던 ‘무지개 군단’이었다.

▲김종환=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잉글랜드 선수 6명을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에서 기술축구의 정상을 보았다. 그의 집념과 폭발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강헌=미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70년 월드컵이 최고다. 남미와 유럽 스타일이 그 때만큼 강렬히 대비된 때도 없었다. 한마디로 곡선이 직선을 제압한 월드컵이었다. 당시 브라질 선수들 모두는 자기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감동적인 팀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최범석=2002한·일 월드컵은 내 인생에 수많은 추억을 남길 잊지못할 월드컵이 될 것이다. 추억이 부족한 우리들에게 경기 한 장면, 입장권 하나, 선수들의 사진 한 장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축구, 아는만큼 보인다

▲최범석=알아야 애정도 생기고 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결국, 축구도 아는 만큼 보인다.

▲강헌=라이브 공연처럼 경기장의 현장감을 즐겼으면 좋겠다. 80년대 어느 해인가, 4시간을 함께 기다려 들국화 콘서트를 본 동생의 첫마디는 “(레코드)판은 장난이네”였다.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즐겨보자.

▲강석진=맘에 드는 선수 한 명을 골라 집중적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다음으로는 전술을 보자. 상대가 공격을 시작하면 우리의 수비라인을 훑어보고, 우리가 공을 잡으면 치고나가는 선수들을 보자.

▲김종환=요즘 웬만한 팬들은 4·4·2, 3·5·2 등 전술에도 훤하다. 그만큼 축구를 보는 눈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최범석=우리나라 경기만 매진되고 다른 팀의 경기는 저조한 판매율을 보이는 월드컵 입장권 판매현황을 두고 ‘애국자만 있고 진짜 축구팬은 없다’고 한다. 일단 경기장에 나가보자. 우리는 TV로 보는 축구에 너무 익숙하다. 직접 경기장에서 보고나면 TV로 볼 때도 경기장의 분위기가 상상된다.

▲강헌=월드컵 경기 하나하나는 승부를 가리는 전쟁이지만, 동시에 타자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잘 모르던 나라의 역사와 민족, 그 미학적 특성이 축구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이렇게 이루어가는 지구촌의 통합, 재미있지 않나?

 

◆한국 축구의 미래는…

▲최범석=우리의 준비과정을 프랑스·일본과 비교하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 나름의 방식이다. FIFA도 감탄한 경기장, 문화와 관광 등 각 분야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기회로 삼자.

▲김종환=눈에 보이는 것만 따져선 안된다. 높아진 한국의 인지도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강석진=월드컵이 끝난뒤 10개의 경기장이 대형할인매장 따위의 공간으로 활용돼선 안된다. 축구 경기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계속 나와야 한다.

▲김종환=축구문화는 프로축구 활성화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최범석=현대 스포츠는 ‘자본싸움’이다. 스페인·이탈리아 리그는 뛰어난 경기력에 자본이 뒷받침돼 인기가 있는 것이다. 스타들의 천문학적 몸값이 가능한 것도 기업의 철저한 스포츠마케팅 때문이다.

▲강헌=마케팅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프랜차이즈가 정착하지 못했다. 유럽프로리그의 마케팅은 어떤지 돌아보고, 98년 프랑스의 경험도 충분히 습득해야 한다. 축구경기의 재미와 함께 향상된 축구담론 문화와 비즈니스 마인드를 잊어선 안된다.

▲강석진=에메 자케 전 프랑스 감독의 말처럼 가족·학교·사회가 조화를 이뤄 유소년 축구를 발전시켜야 한다. 많은 어린이들이 태권도를 통해 예절과 절제, 양보와 투지의 정신을 배운다고 한다. 단체경기인 축구는 여기에 ‘협동’이란 가치를 하나 더한다. 언제 나서고 물러나야 할지, 언제 희생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꾸준한 지도자 양성으로 축구문화를 한단계 높이는 것도 절대 잊어선 안된다.

▲강헌=21세기의 첫 월드컵에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이 나란히 본선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블록체제로 개편되는 새 흐름에 동아시아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어떤 컨셉을 가지고 나가야할지도 월드컵이 맡긴 중요한 숙제다.

( 진행=민학수기자 haksoo@chosun.com ) ( 채성진기자 dudmie@chosun.com )

◇ 토론참석자

▲강석진(姜錫眞·41)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축구협회 기획자문위원, 서울대 수학과 졸, 예일대 수학과 석·박사, ‘축구공 위의 수학자’ 저자

▲강헌(姜憲·40) 단국대 공연예술학과 겸임교수, 대중음악평론가, 서울대 국문과·음악대학원 음악학과 졸, 대중문화 계간지 ‘리뷰’ 편집위원

▲김종환(金鍾煥·40) 중앙대 체육과학대 교수, 국가대표선수, 축구협회 기술위원,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졸, 미 뉴멕시코주립대 스포츠경영 박사

▲최범석(崔凡石·35) 월드컵조직위 해외마케팅 전문위원, 미 UC버클리대 경제학·국제정치학 전공, 서울대 정치학 석사, 하버드대 정책학 석사

 

[월드컵 피플 24시―조직위 최범석 위원] "해외마케팅 전담마크"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서울 파이낸스센터 5층. 2002한·일월드컵조직위원회(KOWOC·이하 조직위)가 위치한 곳이다.

금세기 국내 최대 이벤트라 할 만한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공무원이 대다수인 이곳에 들어서면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이 한 명 눈에 띈다.

최범석 조직위 사무국 해외마케팅 전문위원(35). 동글동글한 체형에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부터 범상치 않다.

▲  반더루스트,영원한 자유의 이름

‘반더루스트(Wanderlust).’ 독일어로 하면 ‘방랑벽’이라는 뜻이고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역마살’이다.

그는 스스로를 반더루스트라 부른다.

그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 보면 이해가 된다.

중학교 1학년 때인 79년,최위원은 공직에 있었던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건너갔다.

본에서 4년간 살면서 유소년 축구클럽 선수로 뛰기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미국에서 다녔다.

UC 버클리에서 경제학과 국제정치학을 복수전공하고 90년 졸업·귀국해 군복무를 마친 후 서울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게다가 우연한 기회에 포항제철(POSCO) 장학생으로 선발돼 하버드 대학 정책학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학위를 딴 후 97년 귀국,서울대 정치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이 동안 유럽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 다녀보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여행을 했다.

‘반더루스트,영원한 자유의 이름(책세상·99년)’은 이때 경험을 토대로 펴낸 자서전적 산문집이다.

▲  KOWOC 해외마케팅 전문위원

최위원은 2000년 6월 선배 소개로 우연한 기회에 조직위에 발을 디뎠다.

기획,홍보국을 두루 거친 후 지난해 9월 현재 보직에 임명됐다.

기획부에서는 FIFA와 일본월드컵축구조직위원회(JAWOC),그리고 조직위 간의 업무조정 역할을 맡았다.

20년 가까운 해외생활로 영어·독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덕분이다.

7개월 후 홍보국 해외홍보과장으로 발령받아 ‘KOREA’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파는 데 전념했다.

현재 입장권 및 국내외 사업을 전담하는 조직위 핵심부서 사업국에서는 해외부문을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모든 사항을 FIFA가 주관하는 월드컵 조직위 업무특성상 FIFA 내 인맥을 확실히 구축해 놓은 최위원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위원은 또 FIFA 지정 15개 공식파트너의 국내 사업을 전담한다.

월드컵 기간까지 이들 기업들의 모든 마케팅 활동은 최위원과의 협의·조율아래 진행된다.

최위원이 앞으로 맡게 될 가장 핵심적인 임무는 FIFA 대회본부 파견. FIFA는 5월 중 서울 하얏트 호텔에 대회본부를 차린다.

최위원은 여기에 파견돼 대회 전 기간에 걸쳐 FIFA와 행동을 같이 한다.

월드컵을 위해 뛰는 최고 핵심인물이라 할 만하다.

 

 

 

 

 

차범근 부자 에이전트 계약

 

차범근-차두리 부자가 처음으로 에이전트 계약을 했다.

스포츠매
니지먼트 업체인 포르투나2002(대표 최범석)는 지난 18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차범근 MBC 해설위원과 차두리(23·빌레펠트)에 관한 독점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계약기간은 오는 2007년 2월까지 4년이며 포르투나2002는 광고와 방송활동,언론홍보 등에 대리인 역할을 전담하게 된다.

차범근-차두리 부자는 이번이 첫 번째 에이전트 계약. 그동안은 차위원의 부인 오은미씨가 실질적인 에이전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계약이 차위원의 공식활동 재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차위원은 지난 98프랑스월드컵 이후 대외 활동을 자제해왔다. 특히 월드컵 조별리그 도중 경질된 뒤 한 월간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 문제가 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다음부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이에 대해 최범석 포르투나2002 대표는 “차위원이 언론 접촉을 포함해 활동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인식이며 차위원 자신도 이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대표는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공부한 뒤 2002월드컵조직위원회에서 FIFA 담당전문위원,해외홍보과장 등을 지냈다.

/임지오 bingo@sportstoday.co.kr

 

스포츠투데이   2003-02-20 22:12:00

차범근감독 본격 활동 재개?

 

차범근(MBC 해설위원) 차두리(독일 빌레펠트) 부자가 첫 에이전트 계약을체결, 관심을 끌고 있다.

신생 스포츠매니지먼트사인 ‘포르투나2002’는 지난 18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차 감독 부자와 만나 독점 에이전트계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계약기간은 오는 2007년 2월까지 4년. 포르투나 2002는 광고와 방송활동, 언론홍보 등 차 감독 부자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대행한다.

차 감독으로서는 이번이 첫 에이전트 계약이며, 특히 그는 그동안 대리인을 두지 않는 대신 부인 오은미씨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혀온 만큼 축구인으로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최범석 포르투나2002 대표는 “한국에서는 물론 독일에서도 차 감독 부자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국내 뿐만 아니라 현지 언론에 대한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을 전개해 차 감독 부자의 가치를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간스포츠   2003-02-20 20:10:59

<차범근 감독, 활동 본격화하나?>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98프랑스월드컵 후 언론을 기피해온 차범근 전축구대표팀 감독이 에이전트 계약을 맺어 축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신생 스포츠매니지먼트 업체인 포르투나2002(대표 최범석)는 지난 18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차 감독과 그의 아들 두리(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에 관한 독점 에이전트계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계약기간은 오는 2007년 2월까지 4년이며 포르투나2002는 광고와 방송활동, 언론홍보 등 차범근 부자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전담하게 된다.

차 감독 가족으로서는 이번이 첫 에이전트 계약이며, 특히 그는 그동안 대리인을 두지 않는 대신 부인 오은미씨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혀온 만큼 축구인으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차 감독은 프랑스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도중 경질된 후 한 월간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 문제가 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이에 대해 최범석 포르투나2002 대표는 "차 감독이 대 언론 접촉을 포함해 활동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인식이며 감독 자신도 이에 공감하고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출신인 최 대표는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에서 FIFA 담당관으로 마케팅전문위원과 홍보과장을 지냈으며 차 감독과는 어릴 적 독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게 인연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jahn@yna.co.kr

 

연합뉴스   2003-02-20 15:39:17

 

 


[스포츠 브리핑]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독일 빌레펠트에서 뛰고 있는 차두리 부자가 스포츠매니지먼트사인 포르투나 2002(대표 최범석)와 2007년 2월까지 광고와 홍보 등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조선일보] 2003년02월21일(금)

 

차범근부자, 포르투나2002와 에이전트계약

독일 분데스리가 빌레펠트에서 활약하는 차두리가 아버지 차범근과 함께 20일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문업체인 포르투나2002(대표 최범석)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2007년 2월까지 4년. 포르투나2002는 이들 부자의 전속계약 및 방송활동 등 전반적인 대리인 역할을 전담한다.
[경향신문]: 2003년 02월 20일 18:49:38

 

2003/02/20 16:10

[축구]차범근 前대표팀감독, 활동 본격화하나?

'98프랑스월드컵 후 언론을 기피해온 차범근 전축구대표팀 감독이 에이전트 계약을 맺어 축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신생 스포츠매니지먼트 업체인 포르투나2002(대표 최범석)는 지난 18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차 감독과 그의 아들 두리(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에 관한 독점 에이전트계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계약기간은 오는 2007년 2월까지 4년이며 포르투나2002는 광고와 방송활동, 언론홍보 등 차범근 부자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전담하게 된다.

차 감독 가족으로서는 이번이 첫 에이전트 계약이며, 특히 그는 그동안 대리인을 두지 않는 대신 부인 오은미씨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혀온 만큼 축구인으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차 감독은 프랑스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도중 경질된 후 한 월간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 문제가 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이에 대해 최범석 포르투나2002 대표는 "차 감독이 대 언론 접촉을 포함해 활동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인식이며 감독 자신도 이에 공감하고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출신인 최 대표는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에서 FIFA 담당관으로 마케팅전문위원과 홍보과장을 지냈다.

www.donga.com

 

 

2003.02.25, am 11:24    GOODDAY

 

 

 

차두리 에이전트 "차붐 신화 반드시 앙코르"

 

 

최범석 대표


[관련기사]
차범근-두리 에이전트 계약


'2 차붐 신화 창조.'

 
지난 16 차두리(23·빌레펠트) 매니지먼트 계약을 '포르투나2002' 최범석 대표(36) 목표다.
 
최대표는 UC버클리와 서울대, 하버드대 등에서 정치학·경제학을 전공한 석사 출신이다. 그는 지난해 '조국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하겠다' 일념으로 ·일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해외마케팅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축구계에 발을 내딛었다. 당시 최대표는 '마당발'이라는 닉네임답게 국제축구연맹(FIFA) 비롯, 세계적 축구인사들과 탄탄한 인맥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달 스포츠 매니지먼트회사를 설립, 고객으로 차범근 국가대표 감독과 아들 차두리를 선택했다. 독일에서 중학교를 다닌 시절부터 시작된 차범근 부자와의 인연도 있지만 무엇보다 차두리의 높은 잠재 가능성이 크게 작용했다.

최대표는 차두리가 아버지 '차붐' 유명세와 유창한 독일어 실력, 그리고 파워 넘치는 플레이 흥행의 3박자를 모두 갖췄다고 평가한다. 그는 차두리의 빠른 성장세에 빌레펠트는 물론 원소속 구단인 레버쿠젠 역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대표는 " 차두리뿐 아니라 다른 유망주들도 분데스리가에 진출할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 포부를 밝혔다.

곽호석 기자 gkforever@hot.co.kr

 

 

 

스포츠서울에 실렸던 글임. 단, 편집 과정에서 일부가 잘려나갔지. 이 글이 원문임. 조만간에 연락해서 한 번 만나자구!

[장원재, 숭실대교수]

분데스리가 데뷔 열 한 경기만에 마수걸이 골을 터뜨린 차두리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78년 아시안게임 결승전 대 북한 전 직후, 선수단과 떨어져 홀로 유럽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청년이 있었다. 한국인 최초의 유럽 축구 진출! 그러나 실상은 그다지 번듯한 것이 아니었다. 그 청년이 입단한 팀은 다름슈다트 98. 2부 리그 탈락에 몰린 데다 이적료 등, 기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번 써 보자는 것이 팀 수뇌부의 속마음이었던 것. 청년은 데뷔전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3-1승리에 공헌한다. 그러나 병역 의무가 청년의 발을 잡았다. 무조건 귀국.  

다름슈다트는 매일같이 서울로 국제전화를 걸어댔지만, 청년이 해줄 수 있는 대답이라곤 침묵이 전부였다. 이듬해 5월과 6월, 행정절차는 청년을 두 번이나 더 독일까지 왕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입단 테스트. 허름한 호텔에서 초조하게 관계자의 연락을 기다리며 몇 번의 비공식 자체 연습경기를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입단한 팀이 프랑크프르트.  

개막 직전의 공식 시범경기, 청년은 오른쪽에서 낮게 날아온 공을 뛰어들어가던 탄력 그대로 헤딩으로 연결, 골을 뽑아낸다. 독일 방송국에서 긴급 공수된 테이프는 한 방송사의 전파를 탔고,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던 청년의 아내는 '좀 안심이 됩니다'라는 한 마디를 끝으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한다. 그가 왜 자신의 상징인 11번이 아니라 8번을 달고 뛰었는가,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사치였다. 하기야 대표 초년병 시절, 그의 배번은 11번이 아니라 9번이 아니었던가.  

정식 데뷔전과 2차전에서 청년은 무거운 몸놀림으로 시종 하였다. 무엇이 그의 몸을 굳게 했을까? 마침내 슈트트가르트와의 데뷔 3차전. (이 경기까지 어쨌거나 세 경기 연속 주전 공격수로 선발 출장했다는 사실도 중요) 오른쪽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을 보고 문전을 향해 뛰어들던 청년은 수비수와 처절하게 몸싸움을 벌이며 일단 공간을 확보한다. 그리고 제자리 뛰기로 지축을 박차며 이마 한 가운데다 정확히 공을 맞추는 데 성공한다. 청년의 앞쪽에 서있던 또 다른 수비수는 점프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더불어 골키퍼도 청년의 동작에 속아 거의 선 자세 그대로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았다. 배구로 치자면 개인 시간차 공격 같은 순간 멈춤 그리고 점프. 그 점프가 의도적인 속임수였는지 아니면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숨고르기였는지는 지금도 분명치 않다. 80년 아시안컵 남북 대결, 이강조의 크로스에 이은 정해원의 동점골이 이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청년의 머리를 떠난 공은 골키퍼의 왼쪽 상단 쪽으로 비행하며 골라인을 넘어섰고, 독일 텔레비전이 청년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았다. 점프 직전의 결연한 표정.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던 굳게 다문 입. 동료들과 관중들의 환호에 파묻히며 청년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었다지. 이 경기를 포함, 청년은 세 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다진다.  

그리고 10년, 청년은 모두 아흔 여덟 번 이나 상대팀의 골 네트를 뒤흔들며 유럽 축구계를 초토화한다. 징기스칸이래 유럽에서 가장 이름을 날린 아시아 사람. 차두리 선수가 아버지의 업적을 넘어서기를 뜨거운 가슴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Economy21 140호]

[사람들] 최범석 포르투나2002 사장

2003년 03월 14일
이원재 기자 (wjlee@economy21)

“축구는 정치이자 거대 산업”

중학교? 서울 서대문중학교. 고등학교? 독일 공립학교 한군데와 미국 사립학교 한군데. 대학? 미국 버클리대 경제학과. 대학원?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책학 석사과정,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박사과정. 경력? 60개국 배낭여행, 저서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 출간 등등….

최근
차범근(문화방송 해설위원)·차두리(독일 빌레펠트) 부자의 에이전트를 새로 맡게 된 스포츠 마케팅회사 포르투나2002 최범석(36) 사장의 ‘화려한’ 이력이다. 차범근 위원과 차두리 선수는 이전까지 차 위원의 아내 오은미씨가 에이전트 역할을 맡아오다가 이번에 차두리 선수가 독일에 진출하면서 외부 에이전트를 구하게 됐다. 그런데 이 자리를 지난해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해외홍보과장을 맡고 있던 최범석 사장이 이끄는 신생 스포츠 마케팅 기업 포르투나2002가 따낸 것이다.

“세계 60개국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돌아다녔습니다. 공부도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하게 됐죠. 그렇게 살아온 게 결국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분야에 뛰어들게 된 원인이 된 셈이네요. 떠돌이 같은 삶 덕에 축구가 정치보다 강한 정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고등학생시절 축구선수였고 대학시절 축구 심판을 하기도 했던 그는, 수많은 지역을 돌아다니고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하면서 스포츠의 위력을 점점 더 실감했다. 축구 하나만으로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과 대화가 통했다. 축구가 정치도 갖지 못한 엄청난 통합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축구선수시절 운동장에서 감격스러운
역전골을 넣는 순간만큼이나 강한 매력을 느꼈다. 이게 지난 2000년 배낭여행광이자 정치학도인 최 사장이 월드컵조직위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수락한 이유였다.

그런데 축구는 정치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산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조직위에서 발견했다고 최 사장은 말한다. “영국에 애버튼이라는 프로축구단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구단 유니폼에는 구단 이름이 한자로 쓰여 있습니다. 중국 통신회사가 이 구단 경기의 중계권을 사들이는 동시에 유니폼 광고권도 사들였기 때문이죠.” 물론 애버튼에는 중국의 스타 축구선수 두명이 포진해 있다.

심지어 선수들의 옷에 자국 관객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글자로 광고를 할 만큼, 이곳은 치열한 자본주의의 현장이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에 한국 선수들이 잇따라 입단하는 것도, 미안한 얘기지만 그 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나서인 것만은 아니다. 아인트호벤 구단이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한국 시청자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스타와 팬들은 이제 비즈니스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최 사장이 꿈꾸는 스포츠 마케팅 기업은 미디어와 구단과 선수와 팬들을 연결해 시장을 만들어내는 스포츠산업의 두뇌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많은 스포츠
마케팅사들이 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다. 미지의 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그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Economy21 140호]

 

[리드칼럼] 최범석 포르투나2002 대표이사

정부는 스포츠 마케팅 전문업체들에 참여기회를 적극 제공하고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스포츠는 비즈니스


2002년 7월초, 일본 요코하마에서 한일월드컵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직후, 세계 최대 이벤트로 불리는 이 행사를 5년 넘게 준비했던 국제축구연맹(FIFA)의 한 핵심 실무자가 스위스로 돌아가는 길에 인사차 서울에 들렀다. 그는 FIFA의 현지 파트너였던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와 업무조율 및 현장조사를 하기 위해 한국을 이미 수십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던 대회준비를 회상하면서 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자존심(pride)은 강한 반면 그 자존심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자신감(confidence)이 부족하다고 느껴왔는데, 이번 월드컵 성공을 계기로 부족했던 자신감이 많이 회복되었기를 바랍니다.”

자존심과 자신감의 불균형. 이것을 나는 노력과 효율성의 불균형에 비유하고 싶다. 단군 이래 한반도에서 열렸던 최대규모의 국제행사 월드컵은, 우리가 아직도 노력(자존심)에 부응할 만한 효율성(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좋은 사례였다. ‘밀어붙여 탱크주의’는 ‘효율적인 전문성’에 비해 더 많은 시행착오를 낳았고, 적지 않은 운을 등에 업고 4강에 들었던 우리 국가대표팀 덕분에 많은 문제점들이 표출되지 않고 지나간 것이 사실이다.

2002 월드컵 이전까지 한국에서 개최됐던 가장 큰 스포츠 행사는 88서울올림픽이었다. 그런데 올림픽의 경험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14년이란 기간 동안 스포츠 시장은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고,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보다 텔레비전 방송중계권 가격이 무려 10배나 올랐다는 사실이 이런 변화의 폭을 대변해준다.

안타깝게도 대회준비를 전담했던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에는 국제 스포츠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물론 개최국 입장에서 경기장과 도로 등의 인프라 건설, 훌리건과 테러를 대비한 안전문제 등 정부와 협의하고 협력해야 할 분야가 많았다. 조직위 직원은 대부분 파견직 공무원들이었는데 이들은 이런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결국 월드컵은 상업적인 행사다. 월드컵에서 아마추어리즘이 죽은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공동개최국 일본은 월드컵을 처음부터 실리적으로 접근했고, 국제 스포츠 마케팅 경험이 풍부한 아시아 최대 광고회사 덴츠 직원들이 일본조직위원회 핵심부서에 집중 배치됐다. 이들은 월드컵이 끝난 후 회사로 복귀해 지금도 계속해서 국제 스포츠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반면, 전직 한국조직위원회 직원은 거의 100%가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다.

반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초대형 국제 스포츠 대회를 많은 노력과 경비를 들이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함께 준비한 두 나라지만, 일본은 그 경험을 한 민간기업으로 옮기면서 국가의 중요한 무형자산으로 만들었고 한국은 그 무형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셈이 됐다.

최근 검찰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월드컵 휘장사업권 로비 사건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월드컵조직위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 월드컵의 마케팅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비전문가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눈이 멀어 ‘밀어붙여 탱크주의’를 다시 한번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월드컵조직위가 과학적인 시장조사를 근거로 기업들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면 관련업체들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여러 국제 스포츠 행사가 개최될 것이다. 이를 대비해 정부는 스포츠 마케팅 전문업체들에 참여기회를 적극 제공하고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 모두가 노력에 부응하는 효율성을 갖고 자존심에 걸맞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둥근 공을 차는 축구도 이제는 과학이라고 하지 않는가.

   [Economy21 151호] 2003년 05월 30일    

최범석 포르투나2002 대표, "우리 인재를 키우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미디어다음

 

이용수 세종대교수(KBS 해설위원 겸 우리회사 고문), 젠 루피넨 전 FIFA 사무총장

젠 루피넨씨와 서울대학교 강준호 교수

우리회사가 공동주최한 국제심포지움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나

 

KBS-1Radio 생방송 100분 토론: "한국 축구, 위기인가?"

퐁피슛 선수와 2년간 worldwide 에이전트 계약서에 사인한 뒤.

조인식은 방콕의 태국축구협회 VIP Room에서 진행됐다

퐁피슛 선수와 2년간 worldwide 에이전트 계약서에 사인한 뒤.

조인식은 방콕의 태국축구협회 VIP Room에서 진행됐다

 

대한민국 vs. 몰디브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대륙 예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스포츠서울은 나드손을 ‘올해의 프로축구대상’에서 올 시즌 처음으로 주는 슈퍼컵 MVP로 선정해 상금 50만원과 함께 트로피를 안겼다. 그는 이로써 지난 해 정규리그, 지난달 A3컵에 이어 또 다시 MVP에 올라 3연속 최우수선수라는 진기록을 일궜다.

차범근 감독, 프란츠 베켄바워와 함께 (2005. 5. 2)

 

프란츠 베켄바워 (Franz Beckenbauer)

[생년월일] 1945년 09월 11일

[국적] 독일

[선수경력] 14살 때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 클럽 입단, 바이에른 뮌헨, 코스코스, 함부르크 등을 거침, 서독 축구대표팀 선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1974년 월드컵 우승

[별명] 카이저 프란츠, 세계적인 수비수

[기타경력] 서독 대표팀 감독,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2006독일월드컵 조직위원장

  

프란츠 베켄바워와의 재회

"Visions of Football" International Conference 사진은 아래 사이트에서:

http://www.fortuna2002.com/visionsOFfootball01

 

 

2006 월드컵 경승전이 열리게 되는 베를린 축구장(위)

이날은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 홈팀 헤르타 베를린 vs.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가 열렸다.

7만3천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메웠다.

함께 독일 출장길에 오른 회사직원들과 함께 Frankfurt 경기장 앞에서

 

버클리 언덕에서 내려다본 샌프란시스코의 노을. 멀리 금문교가 보인다.

언젠가 이곳 언덕에 있는 집을 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이번에 우리 회사(주식회사 포르투나)에서

KBS 인기프로 FC 슛돌이 독일원정을 코디했다.

너무나도 귀여운 아이들.....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