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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WORLD GERMANY

2006 독일 월드컵TM

2006. 5.31-6.30

 

   

FIFA가 발급해준 나의 공식 AD CARD -

월드컵 기간 중에 모든 경기장/경기 출입이 가능하고 독일 초고속 열차 ICE 1등석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었다

드디어 월드컵을 향해 독일로 출발!

하늘에서 내려다 본 프랑크푸르트 발트슈타디온(한국의 첫 경기 장소)

 

월드컵 오디세이(1)] “즐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

2006년 독일월드컵 개막을 맞이해 스포츠 마케팅사인 ‘포르투나 2002’ 최범석 대표의 월드컵 이야기를 연재한다. 최범석 대표는 독일에서 중·고교를 나와 독일 본대와 미 버클리대(경제학·국제정치학)와 하버드대(국제통상·금융학 석사), 서울대(정치학 석사)에서 수학했으며, 2002년 월드컵 조직위 해외홍보과장을 지낸 다채로운 이력을갖고 있다. 미국 축구심판 자격증도 갖고 있는 축구인이기도 하다. 현재 차범근·차두리 부자의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 최 대표는 독일 월드컵 경기뿐만 아니라 월드컵과 관련된 스포츠 마케팅, 독일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일현지에서 체험하고 느낀 점을 지면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여행가방을 챙겼다. 두 달 만에 또다시 집을 떠나면서 이번 출장은 매우 특별한 여행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글쎄. 그냥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고, 뜻밖의 사건도 있을 것 같고, 왠지 이전의 출장들과는 다른 여행이 될 것 같다. 물론 이번 출장에는 월드컵이라는 큰 주제가 있고 다른 나라도 아닌 독일이며, 무엇보다도 우리 축구대표팀의 2002년 4강신화 이후 열리는 첫 월드컵이라는 사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월드컵, 독일, 축구, 이 3가지 키워드는 나에게 유난히 특별하다. 먼저 독일은 나에게 제2의 고향이다. 인연은 보통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독일이라는 나라와 맺은 인연은 분명 좋은 인연이다. 그것도 질긴 인연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12세 때 부모님을 따라 처음 독일에 도착해 사춘기 4년을 보냈고, 독일을 떠나 다른 대륙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23년 넘게 개인적으로 또는 일과 관련해서 꾸준히 독일 땅을 밟고 있으니 끈질긴 인연이라 표현해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인연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 나를 초대한 셈이다. 월드컵과의 인연 또한 각별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필자는 한국 월드컵조직위원회 해외홍보과장과 FIFA 마케팅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의 축제행사를 준비했다. 2002년에는 고향 한국에서, 4년 후인 올해에는 제2의 고향 독일에서 개최되니 월드컵은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가나와의 최종평가전 다음날 독일에서 전화가 왔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독일 축구전문기자와의 통화가 끝날 무렵 그의 마지막 질문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얼마나 선전할 것 같아?”였다. “음, 우리가 최소한 준결승까지는 가지 않겠어? 잘하면 지난번 2002년 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독일과 준결승에서 맞붙는 거지. 하지만 이번엔 독일을 상대로 한국팀이 단단히 복수전을 할 거라고.” “축구전문가의 예견이니까 맞겠지? 내가 보기엔 우리 독일팀이 4강에 다시 오르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데….” 우리는 이 농담 어린 대화를 웃으면서 끝냈다.

월드컵은 세계인의 축제이자 동시에 세계 최고 스타들이 펼치는 축구전쟁이다. 자국 팀이 상대팀에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모두가 이성을 잃어버리는 게 월드컵축구다. 무조건 이길 것 같고, 승리해야만 한다. 90분 경기의 종료휘슬이 울려퍼지기 전까지는 희망을 쉽게 접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로 떠나면서 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가 2002년에 너무나 높이 그리고 멀리 갔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다시 4강에 오를 수 없다고, 16강에 진출하는 것도 어려울 거라 얘기하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왔을 때 과연 그 허탈감을 어떻게 감당해낼지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연초부터 모든 언론매체와 기업광고가 월드컵 마케팅으로 우리 국민의 마음을 한참 들뜨게 만들고 있어 더욱 걱정이다. 2002년에 우리가 승리하면서 축제를 즐겼다면 이제는 패하면서도 축제를 즐길 수 있어야 하겠다. 과연 가능할까?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버릴 수 없겠지만, 제2의 고향은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의 선택일진대, 제2의 고향 독일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여행가방을 닫았다. 대표팀 축구선수도 아닌 내가 긴장되는 것은 무조건 우리 팀이 잘해야 한다는 기대, 지더라도 멋진 경기를 우리 국민에게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망 때문일 거다. 그냥 잊자. 즐기자. 다음 월드컵은 4년 뒤에나 다시 열리니까.

   

  

  

 

 

 

우리 회사는 MBC 월드컵중계팀 현지 코디를 맡았다

 

 

[월드컵 오디세이] 무뚝뚝한 독일의 상냥한 변신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독일인 부부.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꿈 같은 휴가를 보내고 귀국길에 서울에서 1박을 했단다.
“인구 1천만이 넘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우리는 못살 거예요. 시내 도로가 마치 대형 주차장 같고, 길거리에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독일의 대표적인 도시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도 서울에 비하면 한산한 편이다. 한국을 시끄럽게 떠들고 큰소리로 웃고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에 비유한다면, 독일은 단정한 복장에 말없이 얌전하게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필자는 독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균형’이다. 균형은 안정감을 주고 예측 가능하며 움직임이 별로 없어 자칫 지루할 수 있다. 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독일은 매우 균형 잡힌 사회다. 시회시스템이나 정부정책이 크게 우회하거나 획기적으로 수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경제 또한 낮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가 급속하게 양극화되는 현상 없이 큰 골격 안에서 움직인다. 필자가 25년 전 중학교를 다니던 옛 서독의 수도 본을 4년 전에 다시 방문한 적이 있다. 호기심에 어릴 적 살던 멜렘(Mehlem)이라는 동네에 있는 옛집을 가봤다. 거기서 가장 놀랐던 것은, 옛집은 물론 동네 전체가 가게 간판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필자가 매일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타던 시내버스의 시간표가 21년 전과 똑같았다! 아침 6시24분 버스가 여전히 같은 시각이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다음 버스는 38분, 그 다음 버스는 51분….

버스기사 아저씨도 만약 정년퇴직을 안 했다면 아직도 같은 사람일지 모른다.

이처럼 20년 넘게 시내버스 시간표를 수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정된 독일 사회에서 이번 2006년 월드컵은 신선한 변화이자 신나는 국제행사가 될 것이다.

10일 열린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에서 축구팬들과 관광객들이 속속 입국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있다. 평상시 밤 10시만 돼도 한산해지는 독일의 거리에서 이제 브라질 응원단의 삼바축제가 시작되고 네덜란드 오렌지팬들의 응원가와, 한국 붉은악마의 북소리가 울려퍼지면 모범생 독일인들도 가만히 집에 앉아 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월드컵의 슬로건은 ‘친구가 되는 시간’(A time to make friends)이다.

“우리 독일인은 지난 2002년 월드컵의 호스트였던 한국인이나 일본인처럼 밝은 미소로 손님 맞는 걸 잘 못하잖아요. 이번 월드컵 때 우리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독일을 방문하는 외국 손님들에게 평상시 무뚝뚝하게 비춰지는 우리의 이미지를 친절하고 상냥한 이미지로 바꿔야 합니다.” 작년 여름 뮌헨에서 개최된 월드컵 관련 국제회의에서 독일 축구의 ‘황제’이자 월드컵조직위원장인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한 말이다.

앞으로 한달 동안 얌전한 모범생 모습에서 분주하게 손님을 맞는 활달한 호스트로 변신하는 독일인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

또한 2006독일월드컵이 역대 대회 중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월드컵이 될 것을 확신한다는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발언은 조금도 과장됐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무뚝뚝하고 꼼꼼한 독일 국민이 준비한 화려한 축구잔치가 시작됐다.

〈최범석|프랑크푸르트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개막식 - 뮌헨

   

     

   

[월드컵 오디세이] “FIFA는 마피아” 불신의 축제

지난 9일 밤~10일 새벽 벌어진 독일월드컵 개막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개막식 축사에서 “축구를 즐기라”고 외친 쾰러 대통령일까,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독일 대표팀일까, 그도 아니면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일까. 다 아니다. 개막식의 주인공은 바로 독일의 ‘축구황제(Kaiser)’ 프란츠 베켄바우어였다.



선수(1974년), 감독(90년)으로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맛봤고, 2006년 월드컵을 독일로 유치하는 데 성공해 현재 조직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베켄바우어. 그는 고향인 뮌헨 홈그라운드에서 가장 큰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독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뮌헨 억양과 세련된 외모…. 그의 말은 지적이지 않지만 축구에 대해 얘기하면 누구나 존경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기 된다. 비록 바람둥이일지라도 독일의 영웅이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월드컵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블라터 현 FIFA 회장은 민망할 정도로 팬들의 야유를 한몸에 받았다. 회장으로서 8년, FIFA에서만 31년을 일하면서 이번 독일월드컵 개막식은 그에게 아마도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이 아니었을까.



이 진귀한 광경을 지켜보면서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FIFA의 상업성이 독일인이 보기에 너무 지나쳤다는 것, 둘째는 FIFA를 장악하고 있는 스위스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느끼는 우월감, 그리고 결벽증에 가까운 독일인의 청렴함과 FIFA의 부패한 이미지. 먼저 독일인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입장권이다. 74년 서독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자국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을 보고 싶어도 일반 축구팬이 입장권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입장권의 상당수가 FIFA를 후원하는 업체들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들(대부분이 외국기업이다)은 입장권을 중요한 고객들에게 접대용으로 선물하거나 홍보 프로모션 용도로 활용한다. 독일인은 FIFA와 후원기업들이 월드컵 입장권을 끼리끼리 나눠 갖고 정작 자신들은 자국에서 열리는 축구잔치에서 소외됐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독일인들의 아우성에 베켄바우어는 자동응답기처럼 같은 설명을 되풀이한다.

“월드컵은 독일 국내행사가 아닙니다. 세계인의 잔치예요. 경기장 수용인원이 6만명이 아니라 10만명, 20만명이라도 입장권은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이해해 주세요.”

2002 월드컵 당시에도 FIFA의 상업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업성에 대해 우리 한국인은 크게 불만을 갖지 않았다.

불만이 있었더라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야유 한번 못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독일인은 달랐다.

그 배경에는 독일이 스위스에 대해 전통적으로 느끼는 우월감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규모나 인구, 군사력 등 독일은 유럽 현대사에서 스위스보다 항상 우월했다. 그리고 특히 축구에 관한 한 어디 스위스가 독일에 비할 수 있는가.

국제축구연맹임에도 불구하고 FIFA는 회장·사무총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요직을 스위스인이 장악하고 있다. 본부도 취리히에 있다. 필자는 월드컵을 계기로 ‘건전한 민족주의(positive nationalism)’가 독일인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부여할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미국 대통령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는 FIFA 회장을 상대로 그날처럼 노골적인 비난과 야유를 보낼 수 있는 국민은 지구상에서 독일인 빼고 몇 안될 것이다.

FIFA 회장을 향해 야유를 보낸 또 다른 이유는 FIFA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심지어 스위스인도 FIFA를 ‘블라터와 그의 마피아 조직’이라고 한다. 다른 FIFA 대회는 일단 제쳐두고 4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월드컵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는 이 국제조직에 대해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유럽인이 많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직성과 투명성을 중요시하는 독일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스위스 마피아 조직이 독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축구를 지나치게 상업화하고 축구팬을 소외시켰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것 같다.

〈최범석|뮌헨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교육의 장’으로 꽃피운 축제

독일에 도착한 이후 날씨가 연일 최상이다.

독일에서 이런 날씨는 흔치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침에 제일 먼저 날씨 얘기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Wunderschoenes Wetter Heute!”(오늘 날씨 진짜 좋아요!)

“FIFA가 월드컵을 위해 날씨까지 준비해 두었다”고 농담하면 다들 좋은 기분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독일의 전형적인 날씨, 그러니까 우중충하고 변덕스럽게 비가 내리는 날씨 탓에 세계적 철학자·문학가·음악가들이 독일에서 많이 나왔다고 하는 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날씨만이 칸트와 괴테, 베토벤을 배출하는 환경을 만든 건 아니다. 최첨단 자동차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속도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을 질주하다가도 집에 가는 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 식탁 위에 꽂아놓을 생화를 사가는 독일인.

주중엔 정장을 하고 점심시간을 엄격히 지키며 열심히 일하다가도 주말이면 대를 이어 응원하는 프로축구팀의 유니폼과 머플러를 걸치고 경기장으로 가는 독일인.

필자가 독일에 대해 가장 높이 사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고전문화와 현대문화를, 일과 여가를 균형 있게 조화시켜 나가는 그들의 노력이다. 고전과 현대, 과거와 현재가 융화된 문화를 어릴 적부터 생활화하는 독일인들…. 그리고 넓은 의미의 문화 중심에는 교육이 있다. 독일의 교육제도는 우리 것과 많이 다른데,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교육비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요시해온 독일은 국민 모두에게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대학도, 매년 등록금이 치솟는 한국에 비하면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초·중·고교생에게는 교과서와 통학교통비가 무료로 제공된다. 심지어 국가가 대학생들에게 숙식비까지 일부 지원해 준다. 개인이 경쟁적으로 교육비를 지출하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국가가 많은 예산을 들여 교육에 투자하는 셈이다. 교육제도와 방식이 다를 뿐이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독일도 한국 못지않다.

2006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프로그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일 전역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Fair Play for Fair Life’라는 교육캠페인이다.

205개 FIFA 회원국에 맞춰 전국적으로 205개 학교가 참여한 이 프로그램은, 각 학교가 하나의 국가를 맡아 학생들에게 그 나라의 축구팀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역사·지리·언어 그리고 심지어 음식문화까지 가르친다.

어린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이국문화에 관심을 갖고 실감나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남태평양의 섬나라, 중앙아시아 산악지역의 어느 왕국 등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 대해 공부하면서, 언젠가 성인이 되면 그 나라로 여행 떠날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A매치가 열리면 상대 국가대표팀에 대한 스타선수, 전력, 전술 등에 대한 보도는 홍수를 이룬다. 하지만 정작 그 국가에 대한 다른 정보, 이를테면 역사·문화·지리 등에 대한 정보는 접하기 힘들다.

과거 수년 간 우리 국가대표팀이 경기를 한 국가들을 보면 매우 다양하다. 가나, 노르웨이, 트리니다드토바고, 이란, 앙골라….

축구경기를 통해 우리가 평상시 잘 몰랐던 나라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제화는 단지 외국어를 배우고 해외여행을 많이 한다고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평상시에 다양한 외국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고 우리와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사고를 키움으로써 습득되는 것이다. 우리도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32개 출전국에 대해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자 그럼 당장이라도 세계지도를 펼쳐서 코스타리카, 토고, 호주, 트리니다드토바고가 지구상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찾아보시라. 그리고 언젠가 이 아름다운 나라들로 여행을 떠나는 꿈에 푹 빠져보시라. 꿈은 이루어진다!

〈최범석|뮌헨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MBC 김성주 아나운서와 성공적인 월드컵중계를 다짐하며....

 

한국팀의 첫 경기(vs. 토고) 장소인 프랑크푸르트 역

     

 

  

경기장 내 VIP 지역

   

    

    

 

 

 

 

  프랑크푸르트 경기장 내 SKYBOX

 

 

 

   

   

 

 

 

  

 

 

[월드컵 오디세이] 독일도 붉은 물결 ‘서울을 옮긴 듯’

필자가 서울역보다도 훨씬 더 잘 아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걸어 내려가자 독일에서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역은 이미 붉은 물결로 넘실댔다. 한국의 유별난 악마들이 이미 역 광장을 점령했고, 역사 길 건너편 건물에 설치된 한국기업의 광고판들은 이들의 점령을 확인해주는 듯 보였다.

▲중국기자들도 “한국이 우리!”

우리의 국력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붉은 물결은 지하철역으로, 경기장 주변으로, 그리고 발트슈타디온으로 이어졌다. 발트(Wald)는 독일어로 숲이라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경기장은 실제로 숲 한가운데 서 있는데, 나뭇잎의 푸른색과 응원단 셔츠의 붉은색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원색무늬를 만들었다.

경기장의 좌석이 하나 둘씩 채워졌다. 우리 붉은악마의 응원소리도 점점 더 커져갔다. 밖에서도 낯익은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대~한민국.” 경기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대학생 나이의 독일인 커플이 필자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토고!’를 외친다.

토고 대표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종이에 인쇄된 토고국기를 손에 쥐고 있다. 왜 토고를 응원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을 응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토고를 응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머플러와 토고국기는 경기장으로 오는 길에 샀단다. 필자도 그들 입장이라면 토고를 응원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상대팀이다.

경기시작 직전에 베이징에서 온 중국 스포츠신문 기자 둘을 만났다. 오늘 경기에 대한 예상을 물어왔다.

“누구든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이기겠지만, 한국선수들이 심리적인 부담감만 어느 정도 털어버릴 수 있다면 ‘우리 쪽’에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어제 일본경기에 이어 오늘 한국경기를 취재하러 왔다면서, 자기들은 한국팀이 아닌 아시아를 대표하는 팀을 취재하러 왔다고 거듭 강조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팀.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우쭐해진다. 꼭 이겨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살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멋지게 토고를 상대로 첫승을 거뒀다. 이번 월드컵 첫승이자 다른 나라에서 따낸 월드컵 첫승이기도 하다.

▲“다 좋아요. 모든 게”

경기가 종료되고도 한참 동안 경기장 여기저기에 우리 응원단이 남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 옆에서 한 무리의 그들을 바라본다. 정신 없이 90분이 지나갔고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맛본 젊은 붉은악마들은, 멍하니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실감이 안 나는지,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해서 지친 건지, 아니면 시차 때문인지, 얼굴표정이 지쳐 있다. 아마 모두 다일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 경기 90분이 정말 한순간같이 느껴지겠지. 그들 또한 우리 대표팀 선수들만큼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경기장 밖에서는 응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물놀이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지고 호기심 많은 독일인들이 합세해서 같이 껑충껑충 뛰면서 승리를 축하했다. 어여쁜 여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태극무늬가 그려진 얼굴이 아직도 많이 상기되어 있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다 좋아요. 모든 게 다!” 너무나도 솔직한 신세대 표현이다. 꾸밈이 없는 자기 표현이고 주장이다. 멀리 낯선 유럽으로 여행을 와서 좋고, 멋진 독일월드컵 경기장에서 일생에 한번밖에 볼 수 없는 경기를 봤기 때문에 좋고, 응원하는 팀이 승리해서 좋은 것이다.

열심히 일하며 앞으로만 달려온 기성세대와는 달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세대는 노는 것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자기 주장이 있고, 자기 표현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럼 오늘처럼 모든 게 다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월드컵이 끝나고도 오래 오래.

〈최범석|프랑크푸르트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한국팀의 두 번째 경기가 열린 라이프찌히 (vs. 프랑스)

 

 

 

      

 

   

   

 

우리 회사가 코디를 맡았던 MBC 중계팀 외 KBS(이용수 해설위원)와 SBS 중계팀(황선홍, 유상철)

 

 

 

 

   

           

     

 

 

 

 

 

 

   

 

   

   

 

  

    

 

[월드컵 오디세이] 태극호 작은파리서 ‘작은혁명’



<자케(사진 오른쪽) 전 프랑스감독과 함께한

최범석 포르투나2002 대표.>


2006 독일월드컵 12개 개최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옛 동독에 위치해 있는 라이프치히.

인구 50만명인 이곳은 독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도시이자 독일통일이 시작된 곳이다.

1989년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평화적 시위를 통해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에 반기를 들었고, 이는 즉각 다른 동독도시들로 퍼졌다.

결국 다음해인 1990년 동독의 체제는 붕괴되었고 동·서독의 통일로 이어졌다. 라이프치히는 독일축구와도 인연이 깊은 도시다.

1900년 이곳에 최초로 독일축구협회가 문을 열었고, 1903년에는 이곳에 연고를 둔 VfB 라이프치히가 독일리그의 첫 우승팀이 되었다. 광대한 숲과 호수, 강, 운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대학생 시절 이곳에서 살았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작은 파리’라고 칭송했던 라이프치히.

지난 18일(현지시간) 열차가 예정된 도착시각 오후 3시46분 정각에 라이프치히 중앙역 플랫폼에 멈춰 섰다. 초현대식 건축양식의 역사는, 몇시간 후 있을 월드컵경기를 보기 위해 역에 도착한 사람들과 경기와는 무관하게 오늘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도 붐볐다.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역사 안에 있는 중국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의 절반은 붉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필자와 동석을 하게 된 두 한국인 여성은 대구에서 왔단다.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티켓을 구입했고 한국전 전 경기를 볼 계획이라고 얘기했다. 축구를 보기 위해 멀리 유럽까지 왔으면 축구를 정말 좋아하겠다고 하자, “아니요, 국가대표경기만요. 평소에 한국에서 프로축구경기는 안 보는데….”

독일에서 오랜만에 대구억양을 들으니 반가웠다.

긴장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고, 90분 경기가 드디어 끝났다. ‘작은 파리’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붉은 셔츠와는 대조적으로 푸른색 셔츠를 입은 프랑스팀 서포터스는 풀이 죽어 있었다. 98 프랑스월드컵의 영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프랑스 축구팬들은, 설마 한국팀은 이기겠지 했다가 얻은 승점 1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관중이 대부분 떠나고 없는 젠트랄 슈타디온에는 우리 서포터스의 행복한 응원가가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지겹지 않은, 아니 들을수록 흥겹고 기쁜 우리 대한민국의 목소리.

생각 같아서는 우리 서포터스와 함께 경기장에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오늘의 극적인 경기를 축하하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미디어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우연히 경기장 밖에서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98년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에메 자케! 필자는 프랑스팀의 경기결과에 실망해 있을 것 같은 그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I am sorry that the French team did not win.” 그러나 그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아닙니다. 한국팀이 잘 했어요. 축하해요!(No, the Korean team did a good job. Congratulations!”, “우리 팀도 잘 했지만, 프랑스팀이 너무 아쉽게 비긴 것 같아서….(Our team played very well, but the French team could have won…)” “그 정도면 프랑스팀도 잘 한 거예요.(The French team did what it could.)”

어두운 가로등이 비치는 경기장 주차장으로 가는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프랑스 아트 사커의 대부 에메 자케 감독.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고, 한국팀의 선전을 축하해주는 표정은 밝았다. 필자가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동행인들을 옆에 기다리게 하고 쾌히 승낙했다.

에메 자케 감독으로부터 직접 축하를 받다니! 라이프치히 중앙역을 떠나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는 바닥에 앉을 자리도 없이 초만원이었고, 필자는 90분을 내내 서서 가면서도 즐겁고 행복했다.

〈최범석|라이프치히·베를린에서|포르투나 2002 대표〉

 

한국 대표팀의 베이스캠프 "Bay Arena" (레버쿠젠 구단의 홈경기장이다)

 

 

 

 

 

한국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vs. 스위스)의 무대 하노버 

   

    

 

스카이박스에서 함께 경기를 관람했던 FIFA 관계자들과 함께

  

경기 전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FC 슛돌이 관계자들과 우리 회사 독일 직원 군나가 나를 보고 아는척을....^^

       

 

  

  

 

 

  

   

스위스 응원단의 붉은 색과 한국 응원단의 붉은 색이 하노버 경기장을 온통 붉은 색으로 불들였다

 

    

 

 

 

   

  

    

 

       

 

   

 

   

 

      

    

 

 

 

경기장에서 우연히 만난 내 친구 카스텐(전직 한국 폭스바겐 부사장)

[월드컵 오디세이] 실망을 껴안아야 희망이 다시온다

질문: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귀가 크게 생겼다. 왜 그럴까요?

정답: 월드컵 우승에 한이 맺힌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아이들의 양 귀를 잡고 들어올려 국경 넘어 독일을 보여주며 이렇게 얘기한다고 한다. “저기가 월드컵 우승국 국민이 사는 나라란다.”




허탈, 분노, 슬픔에는 가끔 농담이 위로가 된다. 이제 대한민국 축구팀은 다른 15개 팀과 함께 독일을 떠났다.

모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 독일팀을 제외하고는 모든 팀이 2주 안에 고국으로 떠나겠지만, 조금 일찍 가야만 하는 건 분명 아쉽다. 심판은 불공평했어도, 다행히 독일의 축구여신은 우리 한국팀에게 공평했다.

첫 경기에서 멋진 역전승을 허락했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승리보다 더 값진 무승부를 선물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는 다음 월드컵 때까지 잊지 못할 아쉬움을 남겨주지 않았나!

이천수 선수의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매우 솔직하고 성숙한 표현이다. 우리끼리 경쟁하고 결과에 만족한다면 모를까, 국제적으로 경쟁해서 우리의 실력을 평가 받고 싶다면 이천수처럼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의하면, 브라질은 2005년 한해 동안 무려 878명의 프로축구선수를 해외로 ‘수출’했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유럽명문 클럽은 물론 2부, 3부 리그에 꽤 많은 숫자가 진출해있다. 우리 대표팀의 핵심 선수 몇 명은 이미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평가해서 나머지 선수들의 국제경쟁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한 국가의 대표팀 수준이 자국리그의 수준에 비례한다는 말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05~06 시즌에 영국 프리미어십,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메이저리그는 평균 관중수가 평균 3만이 넘었다. 우리 K리그는 이에 비해 10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평균 관중수를 갖고 있다. 재능이 뛰어난 어린 선수들이 해외리그로 ‘팔려’나간다고 해도, 결국은 이들 또한 자국리그가 키워낸 선수일 수 밖에 없다. 클럽시스템, 국민의 축구열정, 그리고 진정한 축구사랑이 합쳐져서 국제적인 축구스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계의 벽은 높다. 그리고 그 벽을 훌쩍 뛰어넘으려면 필수적으로 국내프로축구가 활성화 돼야 한다. 그 길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독일의 축구여신은 우리에게 또 한번의 기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은 자주 일어나면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비록 한국팀이 없는 월드컵 경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환희와 슬픔을 선사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축구를 진정 사랑한다면 세계 최고 선수들의 나머지 경기를 시청하면서 감동을 느껴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우면서 말이다.

- 독일의 축구사랑에 관한 유머 -

한 노인이 옆에 한자리를 비워 놓은채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A:같이 보기로 한 분이 아직 안오셨나봐요?

노인:함께 오기로 한 할멈이 그만 하늘나라로 가서…

A:그럼 가까운 친구나 친척하고 함께 오시지 그러셨어요?

노인: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다들 할멈 장례식에 간다고 해서…???

〈최범석|슈투트가르트·포르투나 2002 대표〉

 

아는 한국 기자들과 한잔

 

 

     

[월드컵 오디세이] ‘즐거운 전쟁’ 축구는 아름답다

축구는 참 아름답다. 지난 4주간 몸으로 체험한 2006 독일월드컵을 이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왜 축구가 새삼 아름답다고 생각이 드는 걸까? 혹자는 축구를 전쟁으로까지 비유하는 데도 말이다. 독일인 개그맨이 한 TV 토크쇼에서 이런 얘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독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려면 우리 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헌법에는 독일영토에서 모든 전쟁을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력전쟁에 대해 누가 이런 농담을 할 수 있겠는가. 축구는 물론 치열한 전쟁이다. 하지만 국민이 하나가 되어 즐길 수 있는 전쟁이다. 설령 패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즐거운 추억만 남을 뿐이다.

한 달간의 이번 출장은 필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스포츠마케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월드컵과 관련된 회사일로 출장을 왔지만, 평생 간직하게 될 아름다운 추억들을 한아름 안고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1만㎞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12개 월드컵 경기장에서 최소한 1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행운도 누렸지만, 그보다도 여행길, 경기장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은 필자에게 축구의 아름다움을 확인해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가족이 월드컵을 보기 위해 독일에 왔다는 멕시코인 대가족, 4년 뒤에 자국에서 개최되는 차기 월드컵을 기다릴 수 없어 미리 왔다는 남아공인 신혼부부, 뜻밖에 입장권을 구해 일본 경기를 보러 왔다는 일본인 항공조종사, 월드컵과 한국인에 대해 책을 쓰고 있다는 미국인 교수, 기차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축구를 주제로 대화를 하던 독일인 아버지와 어린 아들, 자신의 인생은 4년에 한번씩 절정을 이룬다는 브라질인 축구팬, 여행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독일의 밋밋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누구보다도 더 씩씩하게 응원가를 부르던 한국의 붉은악마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축구 때문에 행복했고, 축구로 인해 친구가 되었다.

축구는 그래서 아름답다.

사람이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하다. 월드컵은 거대한 잔치, 축제이다. 우리 한국인은 2002년에 그 몰입의 즐거움을 발견했고, 2006년 여름 다시 한번 월드컵이란 축제에 몰입했다.

기업, 개인 모두 많은 돈을 썼고 많은 시간과 열정을 소비했다.

한국의 거의 모든 방송사와 신문사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취재팀을 독일로 파견했다. 독일인들이 놀랄 정도로 많은 한국사람이 우리 팀을 응원하기 위해 독일로 날아왔다. 한마디로 우리는 극성스러웠다. 가끔은 ‘오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흐뭇했다. 원래 파티는 그런 거다. 몰입하고 돈도 쓰고 ‘오버’도 하는 거다. 모든 걸 잠시 잊고 미친 듯이 노는 그런 거다. 그러다 파티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 같은 열정과 극성으로 생산에 기여하면 되는 거다.

축구가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고, 잔디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축구공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 그래서 축구는 아름답다.

축구는 외형적으로도 아름답다. 파란 잔디 위에서 어우러 지는 땀에 흠뻑 젖은 유니폼,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살결, 치열한 몸싸움.

이 살아 숨쉬는 예술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예술은 계속된다. 팬들은 자기만의 응원복장과 치장, 페이스 페인팅으로 자기표현을 한다. 마치 원시인이 몸에 그림을 그리고 치장을 했던 것처럼. 인간의 창의욕구는 본능이고, 축구는 인간의 이같은 본능을 일깨워 창의적인 자기표현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2006 월드컵은 독일국민들은 평소 무뚝뚝하고 냉정해 보이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독일국민 모두 외국손님들에게 친절함을 베풀었다. 나치와 세계2차대전의 악몽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독일인은, 이번 월드컵기간 동안 처음으로 빨간, 검정, 노랑색의 국기를 마음껏 흔들며 기뻐했다. 과거를 쉽게 잊지 않는 모습, 독일국기의 물결, 모두 아름다웠다. 파괴적 민족주의가 긍정적 민족주의로 다시 탄생하는 과정을 축구가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프랑스 대표팀 11명의 주전선수 중 8명이 흑인이고 주장 지단은 아랍계, 그리고 백인은 단 2명뿐이다. 프랑스인은 다인종으로 구성된 자국대표팀의 이어지는 승리에 열광하고 있다. 앙리와 지단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프랑스인이 인종차별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축구는 인종과 피부색을 초월할 수 있어 아름답다.

1골, 1승도 중요하지만, 축구를 좀더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2010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최범석·프랑크푸르트|포르투나 2002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