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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991, he becomes a part-time soldier (?) for the next 6 months  

이제는 역사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방위들의 존재, 그들의 빗나는 업적과 국방의 기여......남자들은 흔히 자신들의 군대생활과 연애경험을 조금씩 과장해서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어리석을 정도로 액면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얘기한다.

사례 one) 훈련소 입대하는 날, 같은 내무반에 들어온 한 녀석이 간도 크지, 다들 이발소나 미장원에서 머리를 짧게 깍고 왔는데 혼자 긴 머리에 무스까지.....다음날이 군입대 일인지도 잊고 나이트에서 놀다가 곧장 훈련소로 왔을 거라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훈련소 조교가 그의 머리까락을 거머쥐고 조이스틱 움직이듯 팔방으로 흔드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와서(?) 그만 큰 소리로 웃다가 생전 처음 볼에 따귀를 맞다. 그래도 웃음을 멈추지 못하자 조교는 그를 싸이코로 알고 두려워 하기 시작.

사례 two) 목숨과 같이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어다니던 숟가락을(이 식기의 중요성은 정말 군대 갔다오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감쪽같이 도난당한다. 사람을 너무 잘 믿는 그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무젓가락으로 식사를 한지 이틀째. 그는 미스터 무스보다도 더 큰 간으로 내무반장을 찾아간다. "충성!! 제 숟가락을 누가 훔쳐갔습니다. 죽어도 좋으니 새 보급품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충성!!"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던 내무반장. "군대에는 훔친다는 건 없다. 단지 위치이동만 있을 뿐이다. 알았나? 오늘 안으로 위치이동 실시!!" "네....." 원칙만을 고집하다 매번 손해보는 그는 계속 나무젓가락을 고집하는데....그날 저녁식사 후 양은이파 행동대장의 쫄따구였다나(?) 하는 친구가 문득 그에게 숟가락을 내밀었다. "내가 대신 위치이동 시켰다." 숟가락 위에 그의 눈물이 툭 툭.....

사례 three) 훈련이 끝나고 몇 달 뒤 훈련소 동기들이 몇 몇 모이다. 자대배치를 청와대로 받아 모든 동기 방위들의 부러움과 시기가 집중되었던 한 동기생. 끝까지 자기가 하는 일을 '대외극비'를 핑계로 숨기다가 결국 만취한 상태에서 털어놓은 눈물겨운 사연....."나 말이야 사실은, 청와대에서 개밥 주는 일 해. 그래, 멍멍이 개 말이야. 그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짜식들아! 사람도 아닌 개한테 아부한다는 게 말이지. 너희들은 모를거야. 만약 음식을 거부하거나 해서 개가 한 마리라도 아프거나 죽으면, 그건 곧 나의 죽음이란 말이야, 짜식들아...." 인생은 전화위복의 연속이라, 그 친구는 결국 제대할 때쯤 개박사가 되어서 지금은 애완용 개를 위한 장난감(?) 가계를 한다나 뭐라나.

국방부 심리전단(1991)

아무튼 국방부에서 보낸 6개월간의 아쉬운(?) 군대생활을 8월에 마치고 가을학기 동안 대학원 시험준비.

March 1992, he begins his master's degree in political scienc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그의 바쁜 대학원생활(수업 들으랴, 연구소 조교 하랴, 정철학원 영어강사 하랴, 독어/영어 통역 아르바이트 하랴, 데이트 하랴, 술마시랴.....)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대한 그의 애정은 식지 않았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관악산에 올랐고, 틈만 나면 설악산, 지리산, 월악산 등을 찾았다. 해군함을 타고 독도와 마라도를 가본 것도 그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4년간의 서울 생활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4차례의 해외여행이었다. 93년 3월 체코 프라하, 8월 중국 길림성, 94년 3월 룩셈부르크, 5월 캐나다 몬트리올. 이 여행들은 모두 공짜여서 그는 더욱 즐거웠다.

 

 

93년 봄 체코 프라하에서 만난 Carmen(우측)과 그녀의 여동생.

국제변호사인 까르멘은 그 이후 94년 여름 Washington, D.C.에서 그리고 96년 봄 그녀의 고향 Valencia, Spain에서 재회. '사랑과 비즈니스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고 그는 회고.

 

 

 

Aug. 93, China         (만리장성/백두산 천지 폭포)       

 

 

January 94, Seoul Nat'l Univ. (대학원 동기들과 사은회를 마치고)

 

           

Feb. 94, Graduation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그는 이게 마지막 졸업인 줄 알았는데(아니 그러길 바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