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ge Five -

 

굽이굽이 풀밭을 돌아

밝고 유유히 흐르는 고요한 강이여!

마침내 그대 바다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휴식을 찾으리!

4년이나 긴 세월의 온갖 느낌들

때로는 휴식 속에 때로는 투쟁 속에

바라본 그대 물결

인생이 흐르듯 소리 없이 흘러만 가는구나.

고요한 강이여! 그대는 내게

깊고 오래 간직될 교훈을 주었지.

그대는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지만

내가 그대에게 준 것은 노래뿐.

이따금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

나는 그대 흐르는 물결 바라보았지.

마침내 파도처럼 내 가슴에 밀려오던

그 고요한 아름다움.

내 마음 밝고 즐거울 때도

바라보던 그대 반짝이는 물결

내 마음 더욱 가벼워

그대와 함께 뛰어 놀았지.

꼭 그 이유 때문에

내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며

그대 푸른 물결이

하늘빛을 닮았기 때문도 아니어라.

저 어두운 숲이 그대를 감추고

그대 물결 사라지는 곳에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살고 있었지.

그러기에 더욱 그 물가를 그리워했지.

[챨스 강에서]에서 - H. W. 롱펠로

 

   

   

 

 

 '권력은 인간을 거만하게 만들지만

문학은 그에게 그의 한계를 상기시켜 주며,

권력이 인간의 관심영역을 좁히는 반면

문학은

그의 존재가 갖는 풍부함과 다양함을 가르친다'

J. F. Kennedy

 

 

'기쁨의 도시' 캘커타를 떠난지 3일후 내가 도착한 곳은 남인도의 케랄라주(州)였단다. 자연의 생명력을 대표하는 푸른색으로 뒤덮인 이 지방에서 나는 인도의 또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빽빽한 정글과 기름진 평야는 문명에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더구나. 좁은 자연수로(自然水路)를 작은 나룻배를 타고 오가는 이 지방의 순박한 인도 사람들의 모습이란 자연의 정복자들보다는 자연의 품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란 인상을 내게 강하게 주었단다. 이태리의 베니스인은 인간이 지은 건물들 사이로 배를 타고 이동하지만, 이들 케랄라 주민은 자연이 만들어 낸 위대한 창조물 사이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더구나.

인도 남부에 머무는 동안 나는 케타얌(Ketayam)이란 곳에서 배를 타고 알레피(Allepey)를 거쳐 크위론(Quilon)이란 곳까지 여행한 적이 있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규적으로 다니는 약 30미터 길이의 나무배를 타고 케랄라 지방의 인도인들과 같이 자연의 깊이를 느끼고자 했었지. 내가 케타얌에서 배에 올랐을 때는 이미 시골 인도인들로 배 위의 객실바닥은 발들여 놓을 틈 없이 꽉 차 있었는데, 다행히 선장의 배려로 약간의 경사가 진 배의 지붕 위에 올라가 남다른 여행을 하게 되었단다. 미끄러운 나무 판자대기로 된 그 배의 지붕 위에 올라가 앉으니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양탄자를 탄 기분이었어. 물론 미끄러지면 곧장 물 속으로 빠지게 되어 있어 겁도 났지만 말이다.

고동소리 한 번 없이 케타얌의 선착장을 떠나는 배는 주변의 물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연꽃을 살며시 헤쳐 나가며 서서히 움직였단다. 마치 힌두교와 불교에서 깨달음의 존재를 떠받치는 상징으로 보는 연꽃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듯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가 탄 배는 물위를 미끄러져 갔지. 차장이 밑에 객실에서 지붕 위로 손을 내밀어 얼마 안되는 차비를 받아간 뒤 다음날까지 계속될 여행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어. 배가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항해를 하고 있을 때, 20 미터 넓이의 수로 양옆으론 늘씬한 야자수들이 마치 배를 향해 인사를 하듯 몸통을 배쪽으로 구부린 채 빽빽이 서 있더구나. 야자나무의 큰 잎들 사이로 마치 여자의 유방과 같이, 풍부한 야자주스를 담고 있는 야자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지. 야자수보다는 키가 작은 바나나 나무들 사이로 가끔씩 초가집들도 보였단다. 물가에 나와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은 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대나무 낚시대를 물에 드리우고 몸을 쭈그린 채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들은 사뭇 진지하게 보였지. 야자열매를 가득 실은 카누를 노를 저어 옆으로 비끼면서 우리가 탄 배에게 길을 내주는 피부가 까만 인도 남자는 무엇인가를 선장을 향해 소리지르며 밝은 웃음을 짓더구나. 그의 빼빼 마른 작은 얼굴이 내가 보기에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단다.

오후 늦게 배가 가고 있는 서쪽으로 서서히 노을이 지면서 식어가는 태양이 물과 야자수 뒤로 내려앉고 있을 때, 마치 태양의 꼬리와 같이 한 줄기의 긴 구름이 서쪽 하늘에 떠 있었지. 그리고 그 흰 구름이 주홍색으로 물들때쯤 어디로부턴가 그와 비슷한 모양의 구름이 네 개 더 나타나 태양을 행해 뻗어 있었고, 그 모습은 정말이지 다섯 손가락을 가진 신의 손과 같아 보였단다. 고운 주홍색으로 변해 가는 자신들의 날개를 자랑이라도 하듯 넓게 펴고 갈매기들은 붉은 색으로 변하는 물위를 유유히 날아다녔고. 나는 그 순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됨을 느끼고, 인종이나 국적, 또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신의 손바닥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을 때 나는 고개를 숙인 야자수 잎이 미처 가리지 못하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았어. 손에 머리를 베고 배의 지붕 위에 누워 있던 나는 자연은 어쩌면 저렇게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 한시도 멈춤이 없이 항상 새롭게 움직이며 변해 가는 대자연이 하염없이 부럽게 느껴지면서....남인도 하늘에 초롱초롱 박혀 있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잠이 들었던 나를 새벽에 정글의 소나기가 깨웠단다. 이미 비에 젖은 배낭을 아래 객실에 있는 선원에게 넘겨주고 나는 지붕 위에 남았어. 티셔츠와 얇은 면바지를 걸치고 있던 나의 몸은 물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이 이미 더 이상 젖을 수 없을 만큼 흠뻑 젖어 있었지.

나는 다시 양손을 베개삼아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해 누웠지. 굵은 빗방울들이 내 몸에 내리꽂히듯 강하게 내렸지만 나는 어떤 움직임도 없이 눈을 감은 채 그 배 지붕 위에 누워 자연의 감촉을 느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빗물과 섞여 감긴 두 눈에서 흘러내렸고. 내게 그때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는지 알아? 캠브리지의 가을비가 떠올랐어. 윅스 다리 위에서 우산을 강 아래로 던진 채 우리 둘이 하염없이 맞고 있던 그 늦가을의 비. 그 차가운 비를 맞으며 서로의 뜨거운 심장을 느끼던 우리. 작은 우산 하나로 우리에게로 다가오던 비를 막으려 하는 대신 그 자연의 액체에 마음껏 젖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행복했던 우리. 주위의 그 어떤 것도 우리 둘 사이에 끼여들 수 없게, 마치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조각품 속의 두 사람같이 그렇게 서로를 꼭 껴안고 윅스 다리 위에 서 있던 우리 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지. 그리고 그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나는 한참 동안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단다. 그 눈물의 의미는, 글쎄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 젊음의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 H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June 97, he leaves Cambridge, MA,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