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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빠리에서 살아볼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당신이 평생 어디를 가든지 빠리는 항상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입니다. 빠리는 하나의 움직이는 향연이기 때문입니다.If you are lucky enough to have lived in Paris as a young man, then wherever you go for the rest of your life, it stays with you, for Paris is a moveable feast."

    - Ernest Hemingway -

 혼자 생활하고 있으면서 그래도 때로는 무엇엔가에 대해 관계를 갖고 싶은 사람, 하루 동안의 시간의 변천과 날씨의 변화, 그 어떤 팔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리를 향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참고 견딜 수가 없다. 창틀에 기대어 아무런 욕망도 없이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면, 그래도 어느 틈엔지 창문 밑을 지나가던 말들이 그 뒤에 끌고 있는 수레와 소음 속으로 그를 끌어들여, 결국 함께 사는 인간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다.

    - Franz Kafka -

빠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갖인 창. 내가 매일 아침 따뜻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노틀담 성당의 종소리를 듣던 아파트 거실의 창. 나는 지금도 추억 속에서 그 창가에 앉아 있다. 하나 둘 사라져가는 나의 꿈을 나는 그 창가에서 되찾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그 창가에서.....(on the 4th floor above Shakespear & Co., Paris)

 

Oct. 95, He goes to Paris. Before he leaves for France, someone asks him, "Why Paris?" He immediately answers, "Why not!"

그가 만약 "글쎄"하고 대답하기를 주저했더라면, 그는 영원히 빠리로 떠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도 그 해답을 찾으려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his favorite jazz bar in Quartier Latin - here people drink, sing, talk, play piano, and sleep 'til dawn.

    

전 버클리대학 교수 Captain James

 나는 빠리에도 집이 있다. 그것도 프랑스의 배꼽이라 불리는 노트르담 대성당 바로 강 건너편, 세느강변이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답게 내다보이는 건물 안에 있는 집이다. 하지만 이곳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문인들, 예술인들 그리고 여행객들이 언제든지 묵을 수 있는 만인의 집이다. 숙박은 무료지만,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하룻밤에 책 한 권을 읽어야 한다. 집주인인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 할아버지가 만든 숙박 조건이지만, 일일이 확인을 하거나 강요하는 일은 없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그의 바램일 뿐이다. 나는 그를 '빠리의 돈키호테'라 부른다. 절친한 친구들이었으며 이곳을 자신들의 집처럼 여겼던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와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의 대표적 시인 앨렌 긴스버그는 이제 떠나고 없지만, 빠리의 돈키호테는 벌써 50년째 이 작은 '자유인의 공간'을 지키고 있다. 이 서점의 이름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

그럼 지금부터 지구촌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매우 특이하고 미스터리로 가득 찬 이 서점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다.

Shakespeare & Co., Paris

Originally opened on Nov. 17, 1919 as the first English language bookshop by a young American woman, Sylvia Beach

내 여권에는 프랑스 유학비자와 함께 빠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서 찍힌 1995년 10월 22일자 입국도장이 있다. 입국목적은 어학연수. 그러나 도착 3일 후, 세느강변을 지나다가 우연히 들린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조지 휘트먼 할아버지를 만나면서부터 나의 모든 계획이 바뀌었다. 평생 잊지 못할 만남이었고, 앞으로도 반복될 수 없는 행운의 만남이었다.

"뭘 원하지?"

1층에 서점이 있는 건물 계단을 올라 4층 아파트의 문을 노크하자, 마른 체격의 백발 노인이 낡은 나무문을 활짝 열며 영어로 물었다. 노인의 갑작스런 등장과 냉정한 말투에 당황하던 나는 잠시 후, 혹시 임대할 원룸이나 방이 있는지 문의했다.

"뭐 하는 사람이야? 얼마나 묵을 건데?"

"대학원생인데요, 6개월이나 1년......"

"밑에 내려가서 자서전적 에세이를 두 페이지 써서 다시 와."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쾅, 낡은 나무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마치 영화 속에서 애원하는 남자 얼굴에 대고 거절하는 여자가 냉정하게 문을 닫듯, 세일즈맨이 손에 물건을 들고 설명을 시작할 때 집주인이 짜증난 표정으로 문을 닫듯, 쾅.

고약한 늙은이라구. 얼떨떨하고 불쾌한 느낌을 지우려고 애를 쓰며 삐거덕거리는 목조계단을 내려온 나는,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서점 앞 벤치에 앉았다. 세느강변의 가로수 가지에 무성하게 달린 잎들은 르누아르의 유화처럼 밝게 물들어 가고 있었지만, 나의 기분은 대조적으로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이제 또 어디 가서 집을 알아보지. 집 없는 자의 서러움이 몰려왔다.

그때 갑자기 4층 창문에서 고약한 늙은이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너, 빨리 이리로 올라와! 건물 출입구가 닫혀 있으면 서점 안의 통로로 와!"

이건 또 뭐야. 내가 좀 어수룩하게 보인다고 바가지 임대료라도 받을 속셈인가. 저런 노인은 가급적이면 상대하지 않는 게 좋아.

"뭐 해, 빨리 올라오지 않고. 어서!"

나 참,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창피하게 왜 저렇게 고함을 지르는 거야.

잠시 망설이던 나는 결국, 삐거덕거리는 목조계단을 올라 4층 문 앞에 다시 섰다.

"빨리 올라오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늦었어!"

아니, 나한테 화를 내는 건 또 뭐야.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려고 할 때, 노인은 바지 주머니를 급히 뒤지더니 노트르담의 곱추가 들고 다녔을 법한 골동품 같은 큰 열쇠를 하나 꺼내들고 나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2층에 있는 원룸인데, 우리는 '작가의 방'이라고 부르지. 일단 거기서 좀 지내봐." 쾅.

어, 근데 임대료가......다른 계약조건은......같이 내려가서 방을 보고 얘기를 좀 나눠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는 문을 다시 노크하기가 망설여졌다. 차가운 인상의 노인과 다시 대면하기도 싫었고, 벌써 3일째 하루종일 집을 보러 다녔기 때문에 몸도 지쳐있었다. 터벅터벅 다시 계단을 내려온 나는 2층의 낡은 문을 열쇠로 열었다.

S. & Co. soon became the place in Paris for a diverse literary pilgrims such as T. S. Eliot, Andre Gide, E. Hemingway, Scott F. Fitzerald, Ezra Pound, Gertrude Stein, Paul Valery, Thornton Wilder, and James Joyce. These literary pilgrims were not, in a personal or artistic sense, a "lost" generation. They were not wanders but seekers. Like true pilgrims, they were in quest of salvation.

방안에서 나를 맞은 것은 세월이었다.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고서적들이 풍기는 낯설지만 불쾌하지 않은 냄새, 창가의 낡은 나무책상, 색이 바랜 담요에 뒤덮인 침대, 그리고 책장들 사이에 걸린 커다란 거울 두 개가, 내가 모르는 과거로 나를 안내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손에 든 신문의 부동산 광고면을 먼지가 소복이 쌓인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나는 그 앞에 앉았다. 방의 유일한 창문이 마주 보였다. 그리고 유리 너머로 내가 조금 전에 앉아 있던 강변의 벤치와 강변도로, 세느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리모콘의 뮤트 버튼을 누른 뒤 소리 없는 TV화면을 바라보듯 나는, 방안의 적막 속에서 강변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강 주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강 건너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자옥한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가깝고도 먼, 깊으면서도 넓은 아름다운 소리였다.

나는 비로소 내가 빠리에 와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고, 친구 자취방에 맡겨놓은 짐도 잊은 채, 17세기 건물 안에 있는 '작가의 방' 낡은 침대에서 꿈만 같은 첫날밤을 보냈다.

"강 너머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내다보이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창가에는 파란 붓꽃이 담긴 꽃병이 서있다. 이 꽃은 내가 이곳에 도착한 날부터 줄곧 나를 사로잡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1층 서점에서 책들을 정리하며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휘트먼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들떠있던 전날밤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나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다. 사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분명 비쌀 것만 같은 방세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도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빠리, 그것도 시내 가장 중심에 위치한 곳이라면 집세가 내가 상상하는, 아니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미련 없이 포기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나는 그날 아침만은 그 고약한 할아버지를 붙들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떼를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세?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네? 그래도.....제가 어떻게......"

"왜, 싫어? 내가 지금 책을 한 권 편집 중인데, 그럼 나를 하루에 1시간씩만 도와줘. 아 그리고, 이따 저녁식사를 함께 하지. 그 방에 묵는 손님에게는 전통적으로 내가 직접 요리한 저녁식사를 대접하거든. 7시 괜찮지?"

대화 도중 미소 한번 안 짓던 그는, 이 말을 끝으로 내게 등을 돌린 뒤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인 책들 사이로 곧 사라졌다.   

James Joyce's [Ulysses], which was then rejected by American and British publishers, came into light in 1922 when Sylvia Beach published its first edition with Shakespeare & Co. on the book-cover.

내가 6개월간 묵었던 S&C 서점 앞에서

George Whitman, born in 1913 in East Orange, New Jersey, USA, came to Paris in 1946 to spend a summer as a volunteer in a camp for war orphans. And he has stayed in Paris, reopening and running the bookshop, which he called 'Tumbleweed Hotel.'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그는 조지 휘트먼 할아버지를 1995년 10월 25일 빠리 6구에 있는 그분의 서점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으로 인하여 그의 인생은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George, as I called you the "Don Quijote of Paris" then, I still call you by that name. And I always will. Whatever we can find in Cervantes' Don Quijote, you have it all in you.

"안녕, 빠리! 너는 내가 떠나야만 했던 또 하나의 사랑이었단다. 내가 너를 기억하는 만큼 나를 기억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