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ge Six -

Oct. 90, Argentina/Chile, somewhere in the Andes (near the Thousand-Saints-Lake)

산 봉우리의 만년설과 언덕 아래의 맑은 호수가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초라한 집이라도 좋다. 내가 실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수만 있다면......

<Bus Driver in Quindao, China 1995>

<With Carmen's Family, Valencia, Spain, 1996>

<Rio de Janeiro, Brazil, 1990>

<Policeman in Venezuela, 1995>

<Mexico, 1990>

<Mexico, 1995>

모든 일에서 극단까지 가고 싶다

일에서나 길에서나 마음의 혼란에서나

재빠른 나날의 핵심에까지

그것들의 원인과 근원과 뿌리 본질에까지

운명과 우연의 끈을 항상 잡고서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발견하고 싶다

아, 만약 부분적으로라도나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여덟 줄의 시를 쓰겠네

정열의 본질에 대해서

도주와 박해 사업상의 우연과 척골(尺骨)과 손에 대해서도

그것들의 법칙을 나는 찾아내겠네

그 본질과 이니셜(initial)을

나는 다시금 반복하겠네

    - 보리스 빠스떼르나끄

       

Lake Louis, the Canadian Rockies <1995>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11) - 기형도 -

 

     

망명. 이 울림이 나를 사로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든 한 번쯤은 평범한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을 꿈꾼다.

지능 지수가 높은 인간에게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위이며, 인간이 인간인 까닭이기도 하다.

만족에 안주하고 있는 인간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채워지지 않은 혼을 부여안고 불모의 세계를 끊임없이 방황하는 자라면, 누구든 역전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역전과 망명. 그 두 언어가 오늘도 나를 짓누르고 있다.

- 쓰지 히토나리의 소설 [클라우디Cloudy] 중에서

 

 

검푸른 빛으로 짙어가는 여름의 해질녘.

보리까라기 쿡쿡 찔러대는 오솔길로 걸어가며 잔풀을

내리 밟으면, 꿈꾸던 나도 발밑에 그 신선함 느끼겠지.

바람은 나의 얼굴을 스쳐가리라.

아, 말도 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래도 한없는 사랑은 영혼에서 솟아나라니

나는 이제 떠나리라. 방랑객처럼

연인을 데리고 가듯 행복에 겨워, 자연 속으로.

- 랭보의 [감각]에서 -

<Nairobi, Kenya, 1987>

<Lamu, Kenya, 1987>

<Nairobi National Park, Kenya, 1987>

<Lamu, Kenya, 1987>

<Lamu, Kenya, 1987>

<Chile, 1990>     <the Alps, 1995>   

 

 

 

 

 

 

<Vancouver, Canada, 1997>

  <Cancun, Mexico, 1996>

체코 프라하에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 앞에서

<Prague, Czech Rep., 1993>

<Inchon, Korea, 1996>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

외로운 자유인의 유라시아 횡단 기차여행 산문집

                                   

  최범석이 쓰고,

              1999. 4. 16

                          책세상이 출판.

 

 

 

 <에필로그>

매직Magic!

하루 이틀, 바람과 비와 추위와 햇살을 막아주며 나의 임시 안식처가 되어주던 여행길의 수많은 방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삼 년 동안 나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제공해주었던 자취방들. 나는 지금 그 작은 공간들을 떠올린다.

대학시절, 캘리포니아 버클리 시(市)의 엘즈워스 거리(Ellsworth st.)에 있던 자취방에서 나는 처음 지도와 친해졌다.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보면서 가장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지도 위에 점으로 혹은 작은 부분으로 표시된 도시와 나라 속으로 내 자신이 들어가는 그런 상상을 하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꿈들은 그 이후 많이 실현되었다.

지도에서만 보던 장소에 어느 날 내 자신이 실제로 서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대피라미드 옆에, 크레타 섬 계곡에, 에펠탑 밑에, 예루살렘 골목에, 만리장성 위에, 케냐 산 위에, 타지마할 앞에, 히말라야 만년설 위에, 안데스산맥 목장에, 이구아수 폭포 가에, 크레물린 궁 안에, 몽골 초원에, 백두산 정상에.......

그건 마치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독일인 부인이 "매직Magic!"하고 외치는 마술의 최면(催眠)에 걸리는 느낌과도 같았다.

지도와 꿈과 최면.

젊음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고귀한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정

1995년 가을. 33일. 파리에서 서울까지.

또 하나의 짧고도 긴 공간과 시간, 육체와 정신의 여행이었다.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의 여행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게 해준 불멸의 체험이었다.

그로부터 3년 반이라는 세월이, 시계와 달력으로부터 과거와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나이 서른이 되기까지 떠났던 수 많은 길고 짧은 여행들로부터 돌아오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여행기도 문학수필도 자서전도 아닌, 그렇다고 소설은 더더욱 아닌 이 글을 통해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여행들을, 나의 20대를 완성시키고 싶었다. 나를 떠나게 했던 그 열정으로.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아직도 나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큰 숨을 들이쉬며 나의 작은 배에 달린 닻을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감아올린다.

지도 없는 여행이 계속되는 것이다.

소망

불완전한 이 글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세 가지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먼저, 지구촌 어디에선가 나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우선 그 독자가 조금이나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독자가,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고 이 글을 통해 나의 작은 인생경험을 나누어 갖게 된다면, 나는 기쁘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책장을 덮은 뒤, '아, 나도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와 같은 욕망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일어난다면, 자신 안에 잠재해 있는 반더루스트(Wanderlust)의 작은 꿈틀거림을 느낄 수만 있다면, 나는 여행의 동반자를 만난 셈이고, 나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이다.

감사

준 빚은 잊어도 진 빚은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쓰게된 절실한 동기를 있게 해준 여러 분들에게 고개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들 모두를 이곳에 하나하나 기록하지 못하는 아쉬움 속에서, 나에 대한 애정과 관심,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들과 어른들,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당신들의 은혜와 우정은 결코 잊지 않으리라는 말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이 책이 햇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책세상'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보낸다.

끝으로, 나에게 건강과 열정과 본능을 선물하셨고, 영원한 후원자이자 비평가이신 나의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친다.

 

1999년 4월 일산 문촌마을

최 범 석

 

에 대한 독자들의 서평

 

에 대한 언론 보도      

지난 2주, 1999년 4월의 마지막 두 주는 예상외로 나에게 잔인하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믿는 나에게 꽤나 신선한 체험을 허락하는 호의적인 시간이었다.

일단 나의 첫 여행수필집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이 세상의 첫 빛을 보는 것으로 4월의 마지막 두 주는 시작되었다. 1년 이상 나와 씨름했던 단어들이 책이란 매체로 내 눈앞에 새롭게 나타났을 때,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익은 그 단어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치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쓴 글을 대하는 것 같은 낯설음. 몇 번인가 내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원고와 비교를 하고서야 그 표현들이, 그 문장들이 실제로 내가 직접 쓴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내 기억력은 30대의 한 평범한 남자로서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데 말이다.

책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인 "따끈한 책"을 손에 쥐게 된지 이틀만에 두 개의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게되었다. <조선일보>와 <스포츠서울>. 사실은 책이 인쇄되어 나오던 날, 모 주요 일간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인터뷰를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취소되었다. 서울역 앞에서의 사진촬영 얘기까지 나온 상태였는데 편집회의에서 뒤집혔단다. 그땐 솔직히 마음이 좀 상했다. 출판사 직원이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기자가 한 여러 질문 중에 나의 부친에 대한 것이 있었다고 하니 아마 '그 세계'에서도 지저분한 정치 게임이 존재하나 보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글은 내가 썼는데, 기자가 나의 부친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도대체 뭐가 있을까 말이다. 내가 이상주의자인지, 현실이 잘 못된 건지, 아니면 나의 단순한 오해인지......

하지만 4월 20일 아침 <조선일보> 36면을 보고 나는 이것이 새옹지마(塞翁之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 모 일간지에서 기사를 내보냈었다면 <조선일보>에서는 그날 그리고 그 이후에도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에 대한 기사를 그처럼 크게 다루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는 그 기사를 보고 무척 기뻤다. 주위 사람들 중에는 내가 신문사에 청탁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상당 수 있나본데, 그 기사를 쓴 김한수 기자는 인터뷰하는 날 처음 만났고 그날도 나는 일부러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그의 직장 동료들(나의 선-후배들)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인터뷰 전에 출판사에서 관례적으로 신문사 문화부로 보낸 <<반더루스트.....>>를 직접 읽고(신간이 하루에 평균 100권 이상 나온다는데) 수준 있는 질문에 이어 좋은 기사를 써준 그 기자 분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스포츠서울>의 최희주 기자도 마찬가지다. 가끔 지하철을 타기 전에 스포츠신문을 사보지만, 솔직히 그 신문이 서울인지 조선인지 일간인지 구분하지 않는 나에게 관심을 갖아주고 예쁜 사진과 함께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소화한 기사를 실어주어(4월 21일)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는 마치 친구와 카페에 앉아 유쾌한 잡담을 나누듯 흥겨운 1시간 반이었다.

신문에 <<반더루스트.....>>가 소개된 이후에도 라디오/잡지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매주 한번씩 나가는 라디오 FM의 한 고정코너도 맡게 되었다. 전에는 라디오에서 종종 '아무개 씨와 전화연결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전화인터뷰나 게스트와 DJ 사이의 활기 넘치는 대화를 들으면서 마치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로 느껴졌는데, 어느 날 문득 나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걸 들었을 땐,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번 야스민의 매직! 에 걸려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매직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순식간에 4월의 마지막 2주가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5월. 이번 달은 나에게 떠날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나의 <<반더루스트....>>가 기대 이상으로 화려한 spotlight를 받으면서 냉정한 현실 속에서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동안 나는 서서히 그 현실을 벗어날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라이트는 켜졌다 곧 다시 꺼지겠지만, 어둠 속에서라도 나의 문장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나는 떠나련다. '반더루스트'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독자라면 나의 새로운 여행의 동반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1999년 가을 / 쿠바 여행 사진

나는 위험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다.

서재 속의 인간이 아니며, 미지의 것이 불러내는 소리에 결코 저항할 수 없다.

쓴다는 것은 내 기질에 가장 반하는 것이다. 그러고 있노라면 나는

사방의 벽속에 갇혀서 백지를 잉크로 더럽히는 벌을 받는 사람처럼 괴롭다.

밖에서는 삶이 들끓고 있는데,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기관차의 기적 소리, 여객선의 고동 소리가 들려 오고 있는데 말이다.

  - 블레즈 송드라르 (Blaise Cendrars, 1887-1961)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

가뿐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하늘 열릴 날이 있을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위로 희망의 별 오를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까지 걸어가야 할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걸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김 지 하